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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오월 걸상 / 안영춘

등록 2020-05-17 17:13수정 2020-05-18 02:08

“걸터앉는 기구. 가로로 길게 생겨서 여러 사람이 늘어앉을 수 있는 거상(踞床)과 한 사람이 앉는 의자로 크게 나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걸상’의 뜻풀이다. 언중은 흔히 걸상과 ‘의자’를 섞어서 쓰지만, 국립국어원은 걸상의 범주가 의자의 범주를 안으로 품는다고 정의한다.

<고흐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는 빈센트 반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 살 때 그린 작품이다. 평자들은 두 그림 모두 의자 주인의 인격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말한다. 반 고흐가 자신의 방을 그린 <아를의 침실>에도 의자 두개가 나오는데, <고흐의 의자>와 모양에 느낌마저 똑같다. 걸상은 본디 주인의 정령을 품는다는 듯이.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이정록의 ‘의자’는 시 전체가 걸상에 관한 환유다. 모든 힘든 존재가 걸터앉고 기대는 것이 걸상이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수원 경기도청과 남양주 마석 모란묘지에 ‘오월 걸상’이 들어섰다. 경기도청 걸상은 민중미술 작가 홍성담의 판화 <횃불 행진>이 새겨졌고, 모란묘지 걸상은 ‘4·3의 섬’ 제주 출신 조각가 이승수의 작품이다. 앞서 2018년 부산과 전남 목포, 지난해 서울 명동성당에도 오월 걸상이 설치됐다.

오월 걸상들은 작가도, 모양도 다 다르다. 어느 것은 거상이고 어느 것은 의자다. 다만 재료는 모두 돌이다. 돌도 걸상도 원래는 말이 없으나, 오월 걸상은 ‘말 없음’보다는 ‘말 줄임’이다. 소박한 걸상에는 ‘오월 걸상’이라는 이름과 피의 항쟁 기간(5월18일~27일)만 겨우 글로 새겨져 있는데, 행간은 여느 웅장한 5·18 조형물에서도 볼 수 없는 환유로 가득하다.

“우리는 모두 5·18의 희생과 헌신과 나눔에 걸터앉고 기대어 있다. 그러나 40년 전 광주가 고립됐듯이, 오늘의 5·18도 광주에 머물러 있다. 광주로 보면 과잉이고, 전국으로 보면 과소다. 오월 걸상에는 말을 넘어서고 지역을 넘어서고자 하는 뜻이 담겼다.”(오창익 오월걸상위원회 실행위원)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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