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ㅣ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말 중국공산당 정치국 중앙위원회 집체학습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다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일장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가 핵심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혁신을 선도하기에 블록체인은 아주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이 세계를 주도할 기술로 블록체인을 꼽은 셈이다.
지난해 말 베이징에서 만난 한 정치 전문가는 이 발언에 대해, “중국 지도자가 하나의 기술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설명한 적은 없었다”며 “그만큼 중시하고 그만큼 길게 본다는 뜻이다. 향후 10년은 이런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진행상황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블록체인 서비스 네트워크(BSN)이다. 비에스엔은 중국 정부기관인 국가정보센터(SIC) 주도로 중국 통신사 등이 참여하는 플랫폼 사업이다.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들려면 비에스엔에서 여러 형태의 블록체인을 입맛에 맞게 골라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블록체인 개발을 위해 조립만 하면 되는 레고 같은 손쉬운 도구를 국가 주도로 만든다는 뜻이다.
최근 밝힌 계획서(백서)를 보면 비에스엔은 이더리움, 이오스(EOS) 같은 개방형 블록체인도 지원한다. 개방형은 허가형과 달리 관리자의 손길이 미치기 힘들 수 있다. 애초 중국은 개방형이나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범위를 넓혀가면서 국외 개발자들한테도 손짓을 하는 모양새다.
비에스엔의 최대 장점은 비용 절감이다. 비에스엔에 참여한 중국 암호화폐 거래소 후오비그룹의 리린 대표는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에 일반 대규모 클라우드 서비스를 쓰면 1년에 몇만달러가 소요되지만, 비에스엔에선 300달러면 된다고 설명했다. 여타 하드웨어도 비에스엔의 인프라를 쓰면 되므로 구입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 같은 장점에 힘입어 지난해 10월15일 공개 이후 개인 및 기업 개발자들의 테스트가 2천건이 넘었다.
2018년 미-중 관세전쟁에 불이 붙으면서 화제가 된 것은, 중국이 로봇, 인공지능 등 분야에서 자국 기술로 글로벌 경쟁기업을 만들겠다던 ‘중국제조 2025’라는 야심찬 구상이었다. 미국은 산업 주도권을 뺏길까 우려하면서 핵심 공격 목표로 삼았고, 중국은 미래산업에 자국 기업 비중을 줄이고 외국 기업을 늘리는 쪽으로 선회하며 우려를 무마하려 했다.
플랫폼 산업을 도모하는 비에스엔 또한, 성공리에 자리를 잡는다면 세계 블록체인 산업을 중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아직 특별한 반응이 없지만, 블록체인 기술 자체는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의 정체 모를 인물의 영어 논문에서 시작돼 주로 미국에서 발전의 큰 줄기를 형성해왔다. 중국은 그 흐름을 뒤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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