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희 ㅣ 경제부장
드디어 4일부터 전 국민에게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한다. 지난 2월 말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서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돕고 전체 경제의 소비 진작을 위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제안이 나온 지 두달여 만이다.
이 과정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소신’은 사뭇 돋보였다. 여당이 총선 공약이었던 전 국민 지급안을 총선 승리 뒤 재확인하자, 그는 간부회의를 열어 “국회에서 소득 하위 70%라는 기준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설득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말하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기재부의 반대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강력 경고에 기재부가 ‘전 국민 지급’을 마지못해 수용한 뒤까지도, 야당이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추경 심사를 미루는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홍 부총리는 추경안 통과 전날인 지난달 28일에도 국회에서 “지급 대상은 70%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야당 의원들은 “옳은 이야기를 했다” “소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그를 칭찬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홍 부총리의 반란은 자신이 대변인으로 보좌했던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결기’를 생각나게 했다. “재정건전성 복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입니다. (…) 나라 곳간의 파수꾼 노릇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 우후죽순의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테르모필레 협곡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2011년 6월 취임사) 스파르타 왕이었던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군사는 페르시아 대군과 맞서 싸우다 모두 전사한다. 박 장관의 취임사는 당시 높아지던 복지 확대 요구를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기재부가 이번 사태 때 내세운 명분은 “더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재정 여력을 축적해놓아야 한다” “재정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같은 것들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기재부의 저항이 실은 기재부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재정건전성 지상주의와 복지 확대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의심한다.
실제 기재부는 ‘재정이 국가관리의 최후 보루’라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국가채무비율을 갖게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는 역시 오이시디 평균보다 훨씬 작은 재정지출 규모와 공공사회지출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는 “친복지를 지향하는 대통령이 예산권을 쥔 기획재정부를 강력하게 통제하지 않는 한 한국의 관료제는 복지 확대의 거부점(veto point)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상당 기간 그러했다”(<복지의 원리>)고 지적한다. 이런 거부가 한국이 작은 복지의 나라가 된 원인 중의 하나라고 말이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기존의 원칙과 정책을 뛰어넘는 과감함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코로나 시대 정책 원칙에 대해 “지나치게 적은 조치보다는 과도한 조치가 낫다”(<코로나 경제전쟁>)고 말했다. “필요치 않은 사람들이나 기업에 돈이 나가고 심지어는 이중지급이 발생하며 돈이 낭비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중복에 따르는 리스크는 많은 사람이 배제되는 데 따르는 리스크보다 훨씬 작다”고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데에는 코로나19를 잘 극복하라는 요구 외에도, 이번 사태로 다시 한번 드러난 우리 사회의 허술한 안전망을 튼튼하게 만들고, 국민들의 삶의 불안정성을 근본적으로 바꿀 개혁 조처를 시행하라는 열망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적극적 역할, 재정의 확대, 복지의 확충이 필요해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라는 시련을 대가로 치르며 우리 사회가 얻은 귀중한 교훈이다.
기재부가 여전히 스파르타 전사식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면 이번 재난지원금 소동과 같은 혼란은 반복되고 국민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곳간 열쇠를 움켜쥐고 국민과 전쟁을 벌이는 재정당국이 아닌, 적극적으로 재원을 확충할 방안을 찾고 할 일을 하는 재정당국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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