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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K-방역’의 비밀

등록 2020-04-30 17:52수정 2020-05-03 11:06

박권일 ㅣ 사회비평가

대유행은 새로운 ‘국뽕’ 신드롬을 일으켰다. 코로나 사태 대응에서 한국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평소 냉철한 척하던 학자와 언론인까지, 조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거의 엑스터시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국뽕’이든 ‘외신의 칭찬’이든 중요한 건 근거다. 이른바 ‘케이(K)-방역’이 다른 나라들보다 성공을 거둔 배경은 무엇일까? 의료인 및 정치 지도자의 역량과 별개로, 한국에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세 가지 차별요소가 있다.

첫째는 ‘정보환경’이다. 예컨대 미디어가 생산하는 뉴스,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개인 간에 공유되는 정보, 모든 공간에 촘촘히 깔린 폐회로 카메라(CCTV), 전산화된 국민 의료 정보, 높은 신용카드 결제율에 따른 실시간 결제 데이터 등이 그것이다. 한국만큼 개인의 내밀한 정보(생체 정보, 질병력, 경제활동)를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는 국가는 드물다. 인구로서의 개인이 가진 정보뿐 아니라 소비자로서 개인의 정보 또한 세세하게 파악 가능하기 때문에, 억압적 감시사회의 외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는 시민 개개인의 동선을 추적하는 데에 굉장한 효율을 발휘하게 된다.

둘째는 ‘요소 투입형 체제’다. ‘요소 투입형’이란 말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한국 등 아시아 경제성장 모델을 논할 때 언급했던 개념이다. 쉽게 말해 물량을 쏟아부어서 성장을 견인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에 상반되는 것으로 생산효율과 질을 높여 성장하는 ‘생산성 주도형’이 있다. 한국 경제는 이른바 ‘아시아 네 마리 용’ 시절에 비해 상당히 바뀌긴 했으나, 재벌개혁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서 여전히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요소 투입형 시스템이 지배적이다. 즉, 여전히 사람을 장시간 ‘갈아 넣어’ 이윤을 짜내는 구조로 경제가 굴러가고 있다. 방역 현장의 노동 역시 저임금 노동자, 관련 공무원, 일부 의료인들을 살인적인 업무 스케줄에 따라 투입하는, 전형적인 ‘요소 투입형’이다. 2018년 기준 한국 임금근로자 노동시간은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러시아에 이어 오이시디(OECD) 5위다.

셋째는 ‘높아진 안전 감수성(safety sensitivity)’이다. 글자 그대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감각’이다. ‘케이-방역’은 시민의 자발적 협조 없이는 작동 불가능한 모델이기에 개인의 높은 안전 감수성이 요구된다. 지금이야 방탄소년단(BTS)과 ‘케이-방역’으로 주목받는 한국이지만, 1990년대까지 한국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어처구니없는 인명사고로 외신에 오르내리던 나라였다. 여러 대형 사고를 경험하면서 법과 제도가 조금씩 개선되었고, 어쨌든 평균적 안전 감수성도 꾸준히 고양되었다. 2008년 광우병 시위는 식품에 대한 안전 감수성이 집단행동으로 폭발한 사례였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민의 안전 감수성은 전례 없이 예민해졌다. 사스(SARS)와 메르스(MERS)의 유행을 겪으며 공공 방역 시스템이 정비되고 안전 관련 특별법들이 잇따라 통과된 바탕에도, 시민의 높아진 안전 감수성이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높아진 안전 감수성이 곧 사회 구성원 모두의 생명을 존중하게 됐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은 여전히 오이시디 최악의 산재 사망 국가이고, 그 죽음의 절대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2019년 9월, 감사원은 한국철도공사가 선로 작업 시 소지하는 열차 접근 경보기를 정규직에게만 지급해왔음을 밝혀냈다. 시민의 안전 감수성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노동자의 생명은 차별하는 사회, 그게 대한민국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독일 매체 기고문에서 한국의 감염병 대응이 유럽보다 앞선 이유로 유교적 권위주의를 들었다. 황당무계한 분석으로, 그저 자신의 무지와 오리엔탈리즘만 투명하게 드러냈을 따름이다. 근대성이란 기준으로 ‘케이-방역’의 특징을 꼽아야 한다면, 전근대성보다 차라리 ‘과잉 근대성’이 더 적절하다. 이를테면 국제통화기금이 ‘돈 빌려줄 테니 산업 구조조정 하라’고 하면 세계가 경악할 정도로 유혈 낭자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행해 구제금융을 조기 졸업해버리는, 그런 방식의 근대성. 이런 것에 ‘국뽕’을 느끼는 건 자유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그런데 만약 한국이 위기 상황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자원을 제공한다면? 정말이지 그때는 나도 ‘국뽕’에 마구 취해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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