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자는∼(The winner is∼)” 해마다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주목하는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부문별 수상자를 발표할 때마다 나오는 이 말의 내년도 주인은 일찌감치 정해진 것 같다. 아카데미영화제를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내년 2월 열리는 제93회 영화제에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상영작 출품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작품들의 극장 개봉이 속속 취소되거나 6개월 이상 미뤄지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도 아카데미영화제 주요 부문에서 오티티 시장을 선도하는 ‘넷플릭스’의 활약이 점쳐진다.
그동안 넷플릭스 작품이 아카데미에 진출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2019년 <로마>가 감독상, 촬영상 등을 수상했고, 올해는 <아이리시 맨> <결혼 이야기> 같은 수작들이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엘에이(LA) 지역 상업극장에서 7일 이상 상영한다’는 규정을 지켰는데 이번에 이 조항이 유예된 것이다.
아카데미 쪽은 이번 결정이 일시적 예외임을 강조했지만 예외가 새로운 규정의 서막으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코로나19로 극장 문이 닫히자 많은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오티티로 여가 생활의 방향을 틀었다. 1분기 넷플릭스의 전세계 가입자 수가 1500만명이나 폭증했다. 국내에서는 집에서도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빔 프로젝터 매출이 평소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디즈니가 지난해 말 넷플릭스에 대항할 오티티 ‘디즈니 플러스’를 론칭하고, 스티븐 스필버그 등 초호화 감독군을 거느린 쇼트폼(짧은 동영상) 특화 오티티 ‘퀴비’가 이달 초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할리우드 터줏대감들이 오티티 시장으로 분주히 이동하는 가운데 코로나 사태가 아카데미의 높은 성벽 문을 연 셈이다.
이제 ‘마지막 보루’는 칸영화제만 남은 듯하다. 2017년 봉준호 감독, 넷플릭스 제작의 <옥자>가 오티티에 거부감을 가진 관객들의 야유로 상영이 중단되는 등 진통을 겪자 칸영화제는 이듬해 ‘프랑스 내 극장 개봉작’으로 출품 조건을 못박았다. 그러자 넷플릭스가 출품을 거부하면서 불거진 갈등이 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칸, 베를린, 베네치아(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비롯해 선댄스, 토론토 등 세계 유수 영화제 20개가 합심해 유튜브에서 국제영화제 ‘위 아 원’을 5월29일부터 열흘간 개최하기로 했다. 코로나 사태로 5월 개막을 취소한 뒤 아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칸영화제 집행부의 고뇌가 어떤 결정으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김은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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