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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학교는 왜 가나 / 조혜정

등록 2020-04-28 17:38수정 2020-04-29 13:38

조혜정 ㅣ 사회정책팀장

“학교는 ‘작은 사회’잖아요. 선생님이랑 친구 만나서 사귀고 함께 놀고 그런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게 (학교에 가는) 목적 아니에요?”

초등학교 6학년 홍아무개양의 인터뷰가 내 뒤통수를 쳤다. 온라인 개학 2주 차였던 지난 23일치에 우리 팀 기자가 쓴 <한겨레> 기사(“학교는 친구 사귀고 함께 노는 곳인데…소통도 안 되고 답답해요”)다. 학교 안 가서 좋다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12살의 통찰은 자기보다 30년도 더 산 중년을 뛰어넘었다.(밤에 돌발 상황이 생겨 다른 기사를 실어야 해, 이 인터뷰는 수도권 배달판에선 빠졌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준 홍양에게 미안하다. <한겨레> 누리집에선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진짜 그랬다. 선생님께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나는 마음에 나 혼자 계속 손 들면 친구들이 재수 없어 한다는 걸 교실에서 배웠다.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친구가 도움을 요청할 땐 그 친구의 책가방을 대신 들고 집까지 같이 가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학교에서 배웠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루는 사회에서 사람 구실 하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배려와 양보, 협동과 공정한 경쟁 같은 가치를 몸으로 익힌 곳이 학교였다.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일까 궁금했다. 지금도 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을 맡고 계신 은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학습지도, 생활지도 둘 다 중요한데 원격수업을 하니까 생활지도는 하기가 어려워. 생활지도라는 게 결국 인성교육이잖아. 근데 지금은 이(e) 학습터에 기록된 진도율 보고 수업 아직 안 들은 학생들한테 카톡하고 전화해서 얼른 하라는 얘기 정도밖에 못 하지. 하다못해 앉는 자세라든가, 학용품 사용하는 방법이라든가 하는 것도 다 친구들이랑 섞여 있으면서 배우는 거야. 사실 학원에서 선행학습 다 한 거라 아는 내용이라고 해도, 학교에 오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이랑 얘기 주고받으면서 배우는 게 있거든. 나는 이렇게 풀었는데 저 친구는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안다고 잘난 척하면 안 되고, 모른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도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는 건데, 그런 걸 못하니 안타까워.” 선생님 역시 학교와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고 계셨다.

부산 동성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엘사로 분장한 이 학교 온라인 개학식 이벤트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46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주제곡 ‘렛 잇 고’의 가사를, 교사들이 학생들을 격려하고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바꾼 노래가 흐르는 이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폭소가 터지는 동시에 눈물이 솟구친다. “어딨어? 어딨어? (학교엔) 너희가 필요해”라며 선생님이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대목에서 일시정지를 눌렀다. 학생의 발자국이 사라진 학교에선 선생님도 빛을 잃는구나, 먹먹했다.

인터뷰를 했던 홍양은 다음달 18일 생일을 앞두고 이런 소원을 빌고 있단다. “엄마, 생일 선물로 (등교) 개학을 받고 싶어요.” 5월 중순께는 고3과 중3부터 등교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니, 어쩌면 홍양의 소원은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은사님은 “애들이 학교를 너무 간절하게 오고 싶어 하니까 ‘진짜로 등교를 하게 되면 학교를 재밌게 잘 다닐까’ 선생님들도 많이 기대하고 궁금해하는 중”이라고 했다.

홍양이 선생님과 친구들을 직접 만나고, 동성초 선생님들과 내 은사님이 다시 왁자한 학생들 소리로 귀가 먹먹한 교실에 서는 날, 이들은 서로에게 어떤 인사를 건네게 될까? 학교 간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 두 달 남짓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학원과 입시에 뺏긴 주도권을 되찾긴 힘들지라도, 아이들이 성장해 더 큰 사회에 진입했을 때 길잡이 노릇을 할 ‘작은 사회’는 더 튼튼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날의 인사는 “그동안 공부는 잘했니?”가 아니라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한테 제일 하고 싶은 말이 뭐니?”였으면 좋겠다.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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