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한 l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감염된 도시에 빼앗긴 봄. 텅 빈 캠퍼스에서 벌어진 겨울과 봄의 줄다리기는 좀처럼 끝날 줄 모른다. 온라인으로나마 대학의 문이 열리고 여섯번째 주가 지났다. 다음은 조경학과에서 ‘미학과 설계’를 가르치는 19년차 선생의 민망하지만 솔직한 온라인 강의 분투기다.
라이브에 강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해 사전 촬영이 아닌 실시간 화상강의를 택했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는 화상회의 앱 ‘줌’(Zoom)을 쓰기로 했다. 하루 평균 사용자가 2억명으로 늘었다는 줌은, 함께 접속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고 화면을 공유하며 자료를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조교와 잠깐 연습한 게 전부인 상태로, 실전을 연습처럼 하라는 야구계의 격언을 굳게 믿으며 첫 수업을 시작했다. 줌은 사용하기 아주 쉬운 앱이지만, 허공에 혼잣말을 하며 손으로는 피디(PD)와 엔지니어 역할을 동시에 해내느라 진땀을 뺐다. 수강생의 표정과 반응을 살핀다거나 질문과 토론을 끌어내는 건 내 역량 밖의 일. 신통찮은 와이파이 때문에 두번이나 중단된 강의를 스마트폰의 핫스팟에 의지해 겨우 이어갔다.
장비를 보완하고 한층 진지한 태도로 둘째 주에 임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불쾌감을 줄 순 없지 않은가. 웹캠을 장만해 얼굴 상태를 조금이나마 개선했다. 오디오 테스트도 세심하게 했다. 펜 마우스도 샀다. 텍스트 많은 파워포인트를 촌스럽게 여기던 소신을 접고 공유할 시각 자료에 최대한 친절하게 텍스트를 넣었다. 40분 정도 지났을까. 한 수강생이 조심스레 내 말을 끊었다. “파워포인트가 계속 첫 쪽에 멈춰 있어요.” 아, 왜 이제 이야기하니. 낙심 끝에 처음부터 다시 했다.
셋째 주가 되자 비로소 스무명 수강생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보며 농담까지 하는 데 성공한 나에게 선량한 그들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드디어 순항이구나. 방언 터지듯 말이 풀렸고 간간이 영어를 섞는 여유도 부렸다. 나도 유튜버로 데뷔해야 한단 말인가. 거만한 고민이 몰려오는 순간, 팝업창이 떴다. 신중히 읽을 경황이 없었다. 긍정은 나의 힘, ‘예스’ 단추를 꾹 눌렀다. 아, 이런, 윈도가 업데이트되기 시작했다. 강제로 튕겨 나간 교수는 ‘랜선 교실’로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
창밖의 녹색 풍경이 짙어가면서 우리의 랜선 교실은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 나는 연습을 실전처럼 하며 준비 시간을 늘렸다. 이번주엔 조금 더 나은 비디오를 위해 눈썹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소소한 사고는 여전하고, 매주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억지 강의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엔 온라인 강의의 수강자 역할을 처음 해보았다. 쉰명 넘게 줌으로 모인 대학원 세미나 시간의 특강이었는데, 스마트 도시에 대한 스마트한 강의였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잠시 귀 기울이다가 쉰명의 얼굴을 구경하다가 메시지에 답하다가 인스타그램에서 요즘 뜨는 카페 사진을 감상하는, 나는야 멀티플레이어. 아, 내 수업도 이랬겠구나.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와 교육에 대한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빌 게이츠 같은 스타 기업가, 슬라보이 지제크 같은 인기 지식인은 물론이고 너도나도 유행처럼 예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은 중세의 페스트를 소환하고, 지구화의 붕괴와 신자유주의 체제의 파탄을 예견하며, 도시와 학교는 코로나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이제 ‘뉴노멀’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면도 있긴 하지만, 나는 우선 온라인 강의가 끝나는 날 학생들과 각자 웹캠 앞에 맥주 한 캔씩 놓고 화려한 ‘랜선 종강파티’를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