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ㅣ 사건팀장
토요일인 18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대형마트. 식재료가 모여 있는 지하 1층에서 일주일 먹거리를 카트에 싣고 나오던 사람들 여럿이 계산대 앞에서 멈칫하더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선 지난달까지 12명의 계산원이 계산대에 서서 밀려드는 카트를 맞이했다. 하지만 이날 계산원이 서 있는 계산대는 6곳으로 줄어 있었다. 그 자리에 ‘카드전용 셀프계산대’가 6곳 등장했다. 사라진 계산대만큼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이 절반으로 줄었고, 대신 중년의 남성 관리자 1명이 셀프계산대를 낯설어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셀프계산대를 알리는 팻말 옆에는 코로나19 탓인지 커다란 활자로 ‘힘내자 대한민국!’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노인 요양원에선 이달에만 3명의 요양보호사가 해고됐다. 이 요양원은 다음달에도 몇명의 요양보호사를 해고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저임금이긴 해도 이렇게 쉽게 사람을 잘라내진 않았다”고, 이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 이해분이 지난 8일 권리찾기유니온이 주최한 ‘시민발언대’에서 말했다. 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뿐만이 아니다. 수급자 노인의 집에 방문해 돌봄 노동을 하는 방문요양보호사들도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잃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외부인과의 접촉에 따른 감염을 우려한 수급자 노인들이나 수급자와 요양보호사들을 매개하는 방문요양보호센터가 이들에게 휴업을 통보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준 요양보호사 41만5621명 가운데 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6만9472명(16.8%)이고, 방문요양보호사는 34만6149명(83.2%)이다. 요양보호사의 94.7%는 여성이다.
한국은 중년 여성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의존해 일상을 지탱하는 사회다. 요양보호사들의 노인 돌봄 영역이 그렇고, 빌딩이나 지하철 역사 등 공공장소를 청소하는 환경 미화 영역이 그렇고, 학교나 직장에서 아이들이나 직장인들을 위해 밥을 짓는 급식 노동 영역이 그렇다. 하지만 이들은 투명인간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비정규직 신분으로 일하다가 언제든 또 다른 중년 여성들로 대체된다. 문제는 일상이 아니라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위기가 닥칠 때도 사회가 중년 여성들부터 우선 내치고 있다는 점이다. 감염병으로 인해 사회가 위축되면서 돈이 돌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트 계산원이나 요양보호사나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잘려나가고 있다. 지난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고용동향을 보면, 15∼64살 여성 고용률은 1.0%포인트 하락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1.2%포인트 하락한 2009년 6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고, 여성 취업자 수는 11만5천명 줄어 10년2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중년 여성들의 이런 희생이 코로나19 이후 한국 사회의 ‘뉴노멀’이 되진 않을까 하는 점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직접 계산원에게 물건 가격을 체크하고 할인이나 적립 포인트까지 꼼꼼히 물어가며 챙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람보다 기계를 통해 계산하는 ‘비대면 접촉’을 선호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처지에 분노하던 이들 역시 코로나19 이후 하루아침에 방문요양을 취소하는 일이 생겨도 감염 우려라는 이유를 대면 별다른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개학 연기로 인해 돌봄과 교육을 함께 떠맡으며 피로도가 극에 달한 학부모들에게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사라진 일자리는 부차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위기가 사회에 던지는 해악은 비단 취약층의 붕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기는 합의된 것을 의심하는 우리의 태도를 기득권자들이 손쉽게 배제할 수 있게 해준다. 감염병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두고 “힘내자”고 외치며 한쪽에선 중년 여성들을 기계로 대체하는 대형마트의 결정도 위기를 명분으로 이뤄진 손쉬운 배제일지 모른다. 누군가의 삶을 희생해 ‘새로운 표준’을 건설하는 퇴행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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