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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늙은 슈퍼히어로의 회한

등록 2020-04-17 17:20수정 2020-04-18 15:19

노광우 l 영화칼럼니스트

최근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인해 약 두 달 이상 극장가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 영화진흥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예년의 같은 시기에 비해 10분의 1 정도로 관객이 줄었다. 총매출액에서 극장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이 80%가 넘는 한국 영화계로서는 영화업의 붕괴를 우려하는 영화인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예정되었던 신작 개봉도 보류되었고, 극장은 겨울에 개봉한 작품들을 계속 상영하거나 예전에 상영했던 <라라랜드>,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와 디시(DC)의 <로건>과 같은 작품을 재개봉해서 이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재개봉한 작품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중 영화 <로건>은 슈퍼히어로 영화 장르에서 독특한 작품이다. 21세기의 슈퍼히어로 영화 <엑스맨> 시리즈와 <어벤져스> 시리즈는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들이 팀을 이루어서 지구를 위협하는 슈퍼악당에 대항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영화들은 팀을 이루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슈퍼히어로들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주로 보여준다. 이에 비해 개별적인 슈퍼히어로를 다룬 영화들은 이들의 인간적인 측면을 더 부각한다. 슈퍼히어로나 슈퍼악당의 인간적인 측면을 다뤄서 성공한 최근 작품이 <조커>다. <조커>가 미국의 빈부 격차와 복지 제도의 실패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전에 나온 <로건>은 이제는 소멸한 듯한 서부영화의 장르 관습과 실패한 아버지의 멜로드라마 코드를 담고 있다. <조커>나 <로건>은 중년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고 외관상 슈퍼히어로 영화이지만 청소년이 아닌 성인들의 공감을 얻는 드라마가 된다. <로건>은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집중하는 휴먼드라마로 만들어서 슈퍼히어로 영화의 표현 폭을 확대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로건은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리무진 운전사를 하면서 늙고 병든 자비에 박사를 돌보는 것으로 나온다. 어느 날 로건은 알칼리-트랜시젠이라는 생명공학 회사에서 근무했던 가브리엘라라는 간호사와 어린 소녀 로라를 만나는데, 가브리엘라는 자기와 로라를 미국 북부의 에덴이라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나중에 가브리엘라는 살해되고, 로건은 알칼리-트랜시젠이 자기와 같은 뮤턴트들의 디엔에이(DNA)를 이용해 새로운 뮤턴트들을 만들어냈고 로라가 자기 디엔에이를 복제해서 나온 존재임을 알게 된다. 로라와 다른 뮤턴트들을 추격하는 알칼리-트랜시젠을 피해서 로건은 자비에 박사와 로라를 데리고 에덴을 향해 떠난다.

자비에 박사와 로건은 <엑스맨> 시리즈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영웅들이 아니라 병든 노인과 그 수발을 드는 지친 중년의 아들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로라는 로건의 디엔에이를 복제해 만든 클론임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로건은 오랫동안 딸을 보살피지 않은 아버지가 된다. 그래서 로건은 자기 혈육을 보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딸을 보호하겠다는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로건은 알칼리-트랜시젠이 보낸 군대와 로건을 복제해 만든 또 다른 젊은 뮤턴트에 맞서야 한다. 이들과 맞서면서 지쳐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로건은 관객의 동정심을 자아낸다. 살아서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한 이 슈퍼히어로는 그렇게 죽어서 아버지가 된다.

추격자를 피해 이동하는 도망자들이라는 설정이나 이들의 여정을 통해 보이는 텍사스의 광활한 풍경은 예전의 미국 서부영화와 로드무비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늙은 로건은 1970년대의 쇠락하는 서부영화 속 노년의 총잡이나 로드무비 속의 방황하는 인물들을 연상시킨다. 그 시절의 중년 관객들은 늙어가는 총잡이들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요즘의 중년 관객들은 지친 슈퍼히어로를 보면서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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