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ㅣ 전국부장
이번 4·15 총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삼켰다’는 점이다. 그 영향으로 보통 총선 시즌이라면 관심권 밖에 있어야 하는 이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전례 없는 감염증에 대한 공포가 패닉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띄었다. 2월 중순 대구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을 계기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신천지 법인허가 취소” “광화문 일대 집회 금지”(박원순 시장), “신천지 전수조사” “이만희 현행범으로 체포”(이재명 지사) 등 강수를 두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강력한 대응은 과감한 정책 제안으로 이어졌다. 3월초 이재명 지사가 “한시적 재난기본소득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김경수 경남지사도 “코로나 재난 상황으로 위기에 빠진 내수시장을 과감하게 키울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씩을 일시적으로 지원하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박원순 시장도 “중위소득 100%(4인 가족 기준 월 474만9174원) 이하 가구에 상품권 60만원을 지원해주자”고 제안했다. 중앙정부가 당장 시급했던 방역관리에 정신없던 때, 한발 앞서 ‘경제·민생 대책’을 들고나온 셈이다.
여론이 이에 호응했고, 결국 보편 지급에 강력히 반대하던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도 지난 5일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해 일주일 이내로 금융기관을 통해 1인당 50만원을 지급하게 하라”며 급선회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기다렸다는 듯이 이튿날 맞장구를 쳤다. 총선을 배경으로 한 ‘정치적 쏠림’, ‘밀당’이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재정과 정책 모든 면에서 중앙정부의 보조를 받는 지자체 수장들이
앞장서 ‘중앙’의 정책 변화를 끌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은 여전히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이기 때문이다.
가장 발군의 존재감을 드러낸 건 이재명 지사다. 이 지사는 지난달 24일 “경기도민 1364만명 모두에게 재난기본소득 1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선언하더니, 닷새 뒤엔 보편적 재난소득을 시행하는 시·군엔 주민 1명당 1만원씩을 보조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때까지 포천시·화성시 등 관내 11개 시·군이 자체적으로 보편적 재난소득 지급에 나서겠다고 밝혔는데, 불과 열흘 뒤인 지난 8일엔 경기도 31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남양주시를 제외한 30개 시·군이 보편적 재난소득 지급 대열에 섰다. 예산과 여론 동원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공략의 귀재’다운 모습이었다.
김경수 지사는 차분한 자세로 ‘한수’ 더 앞을 내다보려는 모습을 보였다. 6일 “고소득층 중에는 ‘나는 굳이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아도 되니 어려운 분들에게 주시라’고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며 자발적 기부를 통한 사회연대협력기금 조성을 제안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보편적 재난지원금 공론화에 어느 정도 성공하자 건설적이고 사회통합적인 후속 이슈를 들고나온 셈이다. 앞서 지난달 21일에는 개학이 늦어지는 이 기회에 글로벌 표준에 맞게 “9월 신학기제 개편을 검토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은 안정감을 중시하는 기조다. 두 도지사와 달리 선별 지원을 주장했고, 실제 시행 때는 지급액도 줄였다(최대 60만원→50만원). 중도나 보수가 좀더 공감할 만한 위치설정인데, 상대적으로 ‘울림’이 적다는 게 아쉬울 듯하다.
이들의 행보를 두고 일부에서는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행보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지방정부 수장이 경험을 쌓고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건 자연스럽다. 미국에서도 주지사는 대통령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다. 건국 초기 토머스 제퍼슨(버지니아주)이 그랬고, 비교적 최근엔 지미 카터(조지아주), 빌 클린턴(아칸소주)이 같은 경로를 밟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코로나19는 훗날 이들 셋 가운데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도약의 계기로 자리매김되지 않을까. 이들이 형사재판(이재명·김경수)이나 낮은 지지율(박원순) 등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칠지 기대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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