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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코로나19와 시리아 난민에 대한 상상 / 조나단 휘탈

등록 2020-03-30 18:53수정 2020-03-31 02:40

조나단 휘탈 ㅣ 국경없는의사회 브뤼셀 운영센터 분석국 디렉터

흐르는 물과 비누가 없는 곳에서 어떻게 손을 자주 씻을 수 있을까? 빈민가나 난민 캠프에서는 어떻게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전쟁을 피해 떠나는 길에 국경이 막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병이 있어도 의료 서비스 접근이 불가능한 이들은 어떻게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을까. 현재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영향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할수록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것들이 뚜렷해지고 있다. 의료 시스템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며, 법적 지위가 없거나 국가의 공격 대상이 되는 여러 요인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보이게 된다. 각국 정부가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실향, 폭력, 빈곤과 전쟁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취약한 인구가 보이게 될 것이다.

소외계층한테는 코로나19의 고통이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그 상식을 넘어서는 차원의 처지를 요구받는 이들이 있다. 이미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어려워 식량을 비축할 수 없는 사람들, 전쟁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과 폭격과 포위 공격 아래 놓인 분쟁 지역의 주민들이 그렇다.

필요한 의약품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겠는가. 코로나19의 영향에 대비하고 있는 각국의 의료 시스템 중에는 전쟁, 정치적 관리 부실, 자원 부족, 부패, 제재에 의해 이미 한계에 도달한 경우가 많다.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이미 넘치는 환자를 간신히 치료해온 곳들이다. 코로나19는 사회적 배제, 무상 의료 서비스 축소, 불평등에 근거한 정책적 결정들을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체감하게 될지를 보여준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확대하며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인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를 비롯해 코로나19가 특히 치명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지역을 중심으로 의료팀을 파견하고 물품을 지원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예멘이나 남수단과 같이 의료 시스템이 취약하고 분쟁의 영향을 받고 있는 곳에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취약한 지역과 인구를 파악하고, 보건 인식 개선 및 교육을 진행하며, 의료진을 대상으로 위생 도구와 보호장비를 보급하고, 의료시설 내 위생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계속해 지원 규모를 늘려갈 예정이다.

그러나 곧 직면할 ‘임박한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당장 취할 수 있는 결정도 있다. 그중 하나는 그리스 섬에 위치한 과밀집된 난민 캠프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대피시키는 것이다. 아직 전쟁 중에 있는 시리아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나 자가격리와 같은 예방조처를 취할 수 있는 지역 사회에 이들을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국경을 넘어 필요가 가장 큰 곳에 물자를 공유해야 한다. 곧 코로나19의 타격을 입을 다른 지역, 특히 대응 능력이 부족한 곳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또한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다른 여러 긴급구호 프로젝트에서 발생할 공백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한 해 6천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 홍역에 대응하기 위한 의료 지원 활동을 지속해야 하며, 카메룬이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이 분쟁의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의 긴급구호 활동 또한 마찬가지다. 이 외에도 우리에겐 멈출 수 없는 활동이 많다. 이곳 주민들에게 코로나19는 생존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일 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집단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우리는 무력감, 안전의 위협, 미래에 대한 의구심을 느끼지만 이것은 그동안 배제되고 방치되며, 심지어 권력의 자리에 있는 이들의 공격 대상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느껴온 공포와 염려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다만 손씻기의 중요성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각국 정부가 의료 서비스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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