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는 전문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에 조언을 해주는 기업의 비상근이사다.(네이버사전) 이 제도가 국내에 첫 도입된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때이다. 당시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가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총수일가가 부채에 의존해 무리하게 문어발식 확장경영을 하며 독단과 전횡을 일삼는데도, 이사회는 전혀 제동을 못 걸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총수일가를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 의무화를 권고했다.
현행 상법은 이사의 1/4 이상을 사외이사로 뽑도록 했다. 자산 2조 이상 상장사는 3명 이상으로 하고, 이사 총수의 과반수가 되어야 한다.(상법 542조의8) 하지만 현실의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오명이 붙어 있다. 재벌회사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은 95%인데, 이사회 안건의 원안 통과율은 100%에 육박한다.(공정위 ‘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27일 한진칼 주총을 앞두고 조원태 회장과 3자연합(케이씨지아이·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반도건설) 간 경영권 분쟁이 뜨겁다. 조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놓고 표대결이 예상된다. 두 진영의 지분은 각기 30%를 넘어 엇비슷하다. 국민연금(지분 2.9%) 등 기관투자자가 키를 쥐고 있는데, 의결권 자문사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국민연금으로서는 조 회장 재선임 안건보다 3자연합이 추천한 사내외 이사후보 선임 안건에 대한 판단이 더 쉬워 보인다. 3자연합은 김신배 전 에스케이 부회장 등 6명을 추천했다. 이들이 선임되면 제도 도입 22년만에 처음으로 독립적 사외이사(사내이사 포함)가 탄생한다.
총수가 ‘황제경영’을 하는 재벌에서 독립적 사외이사의 등장은 혁명적 변화다. 한진칼 사외이사들은 2018년에 상정된 11건의 안건에 단 한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반면 독립적 사외이사는 기업·주주가치 제고라는 잣대로 꼼꼼히 살필 것이다. 조 회장에게는 ‘눈엣가시’ 같겠지만, 주주들로서는 조 회장과 독립적 사외이사가 기업·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독립적 사외이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려면 1명 보다는 최소 2명 이상 선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영진이 추천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5명의 사외이사 후보들도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하지만 조 회장의 입김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진칼 주총은 한진사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공산이 높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한진에서)오너경영은 안된다”며 전문경영인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조 회장이 이번에 재선임돼도, 앞으로 경영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버티기 힘들다. 오너경영은 재벌의 상징이다. 지금은 코로나에 묻혔지만, 한진칼 주총은 재벌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곽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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