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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킹덤’, 위기의 국가 기능 / 노광우

등록 2020-03-20 17:21수정 2020-03-21 17:22

노광우 ㅣ 영화칼럼니스트

<킹덤> 시즌2가 최근 넷플릭스로 공개되었다. 영화 <창궐>과 더불어 <킹덤> 시리즈는 사극과 좀비물을 결합한 독특한 작품이다. 영화 <부산행>이 성공한 사례도 포함해 좀비물은 다른 서양 공포영화 장르에 비해 우리나라 대중영화 장르로 잘 받아들여졌다. 좀비물의 이야기 구조가 공동체가 위기에 처할 때 등장인물들이 합심해 위기를 극복하는 재난영화의 이야기 구조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좀비물 이전에도 한국 영화에서 주로 자연재해나 인재를 다룬 재난영화들이 등장했다. <해운대> <타워> <연가시> <감기>와 같은 작품들이 그 예다.

그러나 현실에서 2014년의 세월호 침몰 사건과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 국가가 보여준 허술함, 무능함과 무책임함은 위의 재난영화에서 묘사되는 상황이 전혀 허구적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한국 영화가 재난을 다루는 방식은 2015년 이후 달라졌다. 주인공은 어느 공간에 고립되어 있고 구조대는 오지 않거나 구조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그려지고, 고립된 인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국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킹덤>은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기능을 복구하려는 노력을 담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킹덤> 시즌1에서는 이런 국가의 무능과 지배 엘리트의 무책임을 좀비가 된 왕과 이기적인 양반들, 그리고 그런 양반들만 챙기는 지방 아전들의 모습으로 나타낸다. 왜란이 끝난 지 3년이 지난 시점, 국왕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직 영의정 조학주와 어린 중전만이 국왕을 알현할 뿐이다. 이는 지난 정권의 문고리 3인방을 연상시킨다. 부왕을 걱정한 세자는 부왕의 병세를 알기 위해 부왕을 진찰한 의원을 찾아서 동래로 간다. 국왕이 없는 틈을 타서 조학주의 국정농단은 극에 달하고, 이에 반발한 유림은 세자를 중심으로 궐기할 것을 결의한다. 이를 빌미로 조학주는 세자를 역적으로 몰아 폐위하려 한다.

동래에 도착한 세자와 호위무사는 낮에는 시체이지만 밤이면 일어나서 사람들을 물어 같은 부류로 만드는 좀비들을 보게 된다. 이 지역 의녀인 서비는 이를 역병으로 간주하여 치료할 방법을 궁리한다. 세자는 난리를 수습하려 하지만, 동래부사와 아전들은 양반들만 배에 태우고 피신한다. 조학주는 역병이 창궐하는 상황을 빌미로, 중앙군을 파견하여 경상도를 봉쇄하면서 세자를 체포하려고 한다. 현대의 계엄령이나 위수령과 비슷하다. 세자는 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유림의 거두 안현 대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세자와 안현 대감이 거느린 장정들은 상주읍성 주변에 방어진을 친다.

시즌2에서는 상주 방어에 성공한 세자가 국가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한양으로 돌아오는 한편, 조학주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권력을 독점하려는 중전의 음모를 주로 다룬다. 한국의 사극은 후궁들의 암투와 정파 간의 당쟁을 다루거나, 또는 왕자의 난과 계유정난처럼 왕위 계승을 둘러싼 내전과 쿠데타 상황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왕족이나 국가가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백성을 구제하는 인물로는 홍길동이나 임꺽정과 같은 의적이 등장한다.

<킹덤>에서 세자가 칼을 들어 좀비들의 목을 치고 병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에 가장 근접한 역사적 인물은 임진왜란 당시 분조를 이끌었던 광해군이다. 강력한 반대파의 견제를 받는 상황에서 세자는 안현 대감과 뜻있는 유생들로 상징되는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난리를 수습하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분투한다. <킹덤>은 보기 드물게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을 세자의 헌신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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