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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김여정의 담화에 답한다면

등록 2020-03-19 19:03수정 2020-03-20 02:07

박병수 ㅣ 논설위원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2018년 초 처음 남한에 왔을 때 사람들의 관심이 엄청났다. 어딜 가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을 받았고, 밝고 구김살 없는 표정과 처신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청와대도 방문했고, 몇차례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정답게 눈을 맞추는 모습도 카메라에 포착되곤 했다.

그런 이가 지지난주 담화를 내어 청와대를 대놓고 비난하고 나선 건 의외였다. 청와대가 앞서 북한의 방사포로 추정되는 발사체 발사에 유감을 표명하며 중단을 요구한 것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심지어 ‘주제넘다’느니 ‘저능하다’느니 하며 막말까지 한 건 무척 실망스러웠다. 군 관계자나 안보 관련 담당자도 아닌데, 굳이 이런 악역에 동원해야 했을까? 북한 권력의 작동 방식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아예 말도 안 되는 내용만 담긴 건 아니다. 거친 표현을 압축하면, 단거리 발사체 발사는 인민군 포병 훈련의 일환이었는데 남한도 군사훈련을 하면서 왜 우리 훈련만 문제 삼느냐는 항변인데, 그렇게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훈련이 군의 일상사인 건 어디든 같기 때문이다.

논란이 됐던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가 나중에 군이 분석한 대로 신형 대구경 방사포라면, 청와대까지 나설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방사포가 여러 발의 로켓을 동시에 발사해 순식간에 광범위한 지역을 제압하는 위협적인 무기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남한에도 이에 대항해 비슷한 무기인 다연장로켓 ‘구룡’과 ‘천무’ 등이 작전 배치돼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공개된 방사포 발사 장면으로, 이동식발사대(TEL) 위 4개의 발사관 중 1개에서 발사체가 화염을 뿜으며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2020.3.3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공개된 방사포 발사 장면으로, 이동식발사대(TEL) 위 4개의 발사관 중 1개에서 발사체가 화염을 뿜으며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2020.3.3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북한이 2일 발사한 신형 대구경 방사포는 사거리가 200㎞가 넘고 정확도와 위력을 향상한 것이라며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이 부족한 군사자원을 제한된 분야에 한정해 쏟아붓는 것에 그렇게 민감하게 대응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우선 남한 군당국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한 군당국이 2017년과 2018년에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각각 19차례, 26차례 했다는, 국회 보고자료를 인용한 언론 보도도 지난해 9월 나온 바 있다. 더욱이 남한은 북한에 없는 첨단 정찰장비와 정밀 유도무기, 스텔스 공중전력 등 다양한 무력 수단도 갖추고 있고 또 추가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적어도 재래식 무기에 관한 한, 올해 국방예산 50조원 시대를 개막한 남한을 북한과 비교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걸 볼 때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청와대까지 나서 논평하는 건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 안정과 남북관계에 부담이 될 소지가 크다. 청와대가 침묵을 지키기 어려운 국내 정치환경이 있는 건 사실이다. 당장 청와대가 아무 입장도 내지 않으면, 보수 야당과 몇몇 언론이 ‘북한 눈치보기’라고 터무니없이 공격해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언제까지 핵·미사일 같은 대량파괴무기(WMD)도 아닌 재래식 전술 무기까지 정치적으로 소모적인 논쟁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 단순히 군사 전술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다뤄야 할 일은 이제 군당국에 맡겨놓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당시 합참은 북한의 발사체 발사에 대해 “한반도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의 기본 정신에 배치되는 것”이라며 강한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런 정도면 되지 않을까?

김 제1부부장의 막말 담화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곱씹어볼 대목은 또 있다. 김 제1부부장은 “우리는 누구를 위협하고자 훈련한 것이 아니다. 나라의 방위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에서 훈련은 주업이고 자위적 행동”이라며 ‘남한은 참견 말라’는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말은 ‘한-미 연합훈련은 북침 예행연습’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남한이 “연합훈련은 남침에 대비한 방어 훈련”이라고 반박하는 것과 닮아 있다. 남북이 똑같이 자신의 훈련은 방어용이지만 상대방의 훈련에 대해선 공격용이라고 의심하는 상호 불신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 남북 군당국 간 만남과 교류는 더 절실해진 것 같다.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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