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아 재난을 초래했다는 야당·보수언론의 주장대로라면, 지금쯤 서울 한복판은 조선판 좀비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처럼 확진자들로 넘쳐나 피할 곳을 찾기 힘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나마 한국에선 감염병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리더십이 무너지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은 감염병에 대처하는 개별 국가, 그리고 국제사회 리더십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중국은 ‘2강’에 걸맞은 국제사회를 이끌 리더십을 아직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차례 팬데믹 또는 그에 준하는 감염병과의 전쟁을 지휘했던 미국은 이젠 그 역할을 포기한 것처럼 행동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불길하고 심각한 공포와 불안이 지구 전체를 감싸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엔 이런 리더십의 붕괴와 그에 따른 국제 협력의 부재가 자리잡고 있다.
먼저 중국을 보자. 중국에선 중앙정부의 과도한 통제와 권위주의가 지방정부의 투명성을 가로막아, 초기 진압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코로나19의 첫 발병이 중국 정부 공식 발표보다 훨씬 앞설 것이란 관측이 유력한 건, 상부 보고를 위해 사실을 감추는 데 급급한 중국식 관료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500만명이 사는 도시 전체를 완전 봉쇄하고 공장과 학교, 다중이용시설을 전면 폐쇄하는 공격적인 방역 정책은 분명 효과적이었지만, 철저한 상명하복의 통제 사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10일 우한을 방문해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전환점을 돌았다고 선언했지만, 이미 중국 정부의 신뢰는 심각하게 추락했다.
미국은 또다른 측면에서 심각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부터 이 사태를 과학에 근거해 접근하기보다, 철저하게 정치적 계산과 선거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려했다. 미국은 사태 초기인 1월31일 벌써 중국 여행객들의 미 본토 입국을 금지해버렸다. 자국민에겐 코로나가 독감과 별다를 게 없다고 손쉽게 말하면서 중국엔 ‘입국 차단’이란 초강수를 둔 건, 코로나19를 빌미로 중국을 정치·경제적으로 압박하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었다. 그게 방역대책으로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건 바이러스가 급속 확산하는 지금의 미국 상황이 잘 보여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한 직후인 11일 밤(현지시각)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의 텔레비전 대국민 연설은 ‘리더십 실패’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일 것이다. 트럼프는 “유럽인의 미국 입국을 30일간 금지하겠다”고 발표해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민의 불안이 가라앉기는커녕 세계는 더 큰 혼란과 공포로 빠져들었다. 대국민 연설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물 가격이 추락하기 시작했고, 이튿날 뉴욕 주식시장은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최악의 폭락을 기록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코로나 공포’가 본격적인 세계 경제위기로 옮아붙는 순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훼손하는 메시지를 내보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평했다.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미·중 두 강대국이 드러낸 리더십의 실패가 지금 세계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이탈리아에선 일관성 없이 수시로 바뀌는 대응체계가 시민 불신을 부추겨 사태를 악화시켰고, 일본에선 반론과 내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아베 정권의 독선이 정치적 위기를 심화했다. 한국 역시 완벽하진 않지만 이들 나라에 비해선 정부 신뢰도의 추락 또는 리더십 훼손이 덜한 게 사실이다.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관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대부분 ‘잘한다’와 ‘잘못한다’는 비율이 6 대 4 정도로 나온다. 사태 초기부터 일관되게 정부의 무능과 사대주의를 조롱하고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했던 야당과 보수언론의 태도에 비춰보면, 이런 수치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아 재난을 초래했다는 야당·보수언론의 주장대로라면, 지금쯤 서울 한복판은 조선판 좀비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처럼 확진자들로 넘쳐나 피할 곳을 찾기 힘들어야 했을 것이다.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정치적 결정만 한다”고 청와대를 맹비난했던 대한의사협회는, ‘부정확한 정보로 미국민을 혼란시키고 정치적 비판자들을 폄하하는 데 급급했던 트럼프와 달리, 한국 대통령은 보건당국 관리들을 앞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고 평가하는 미국 언론 보도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나마 한국에선 감염병과의 전쟁을 지휘하는 리더십이 무너지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오히려 추락하는 건, 국민 안전보다 정권 퇴진에 명운을 건 것처럼 보이는 ‘통합 보수’에 대한 기대감이 아닐까 싶다.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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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개설된 코로나19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 17일(현지시각) 한 간호사가 차에 타고 있는 의심환자의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이 드라이브스루 검사 기법은 한국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시애틀/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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