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ㅣ 강원 영월군 영월읍 하늘샘 지역아동센터장
코로나19로 인해 지역아동센터의 상황도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학교가 개학을 3월23일로 연장함에 따라 지역아동센터도 22일까지 휴원이 연장되었다. 이제 한주만 더 참으면 센터가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감도 지난 목요일을 지나면서 꺾였다. 개학이 추가로 연기될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우려가 사실이 된다면 개학 연기가 4월까지 이어지게 된다.
지역아동센터 휴원으로 인해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긴급돌봄이 필요한 아이들만 남았다. 감염예방을 위한 외부인 방문제한 조치에 따라 프로그램 강사, 자원봉사자들도 나오지 못했다. 긴급돌봄만이 최선인 양 된 셈이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도 잘 지내는 것만은 아니다. 어른들이 없는 빈집에서 아이들끼리 모여 게임을 하거나 마스크도 없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휴원한 지 3일도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간 4명의 아이들이 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엄마는 농공단지로 일하러 가고 아빠는 먼 도시로 일거리를 찾아 떠나 한명뿐인 아이를 집에 두지 못했다. 혼자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아이들을 어른 없이 혼자 집에 있게 하는 것이다. 결국 부모는 아이들을 지역아동센터로 보냈다.
남은 아이의 수가 적다고 돌봄이 쉬워지는 건 없다. 글을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아이에게는 전담교사가 매달린다. 오지 못하는 프로그램 강사를 대신해 몇명 되지 않는 교사들이 돌아가며 영화를 보여주거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공원에서 춤을 추거나 배드민턴을 같이 치기도 한다. 그런 재미있으면서도 슬픈 일상이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때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다. 아무리 좋은 것도 반복하면 아이들은 더 재미있는 것을 찾아 고개를 돌리기 마련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아이들은 이제 학교에 가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4주 전까지 개학이 싫다고 입을 모았던 아이들이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는 모든 게 교육이다. 아침에 서로 인사하는 것에서부터 30초 이상 손 씻기, 얼굴을 돌려서 기침하기, 빙빙 돌아다니며 밥 먹지 않기에 이르기까지 센터에서 말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란 웬만해선 없다. 자원봉사자와 외부 강사의 빈자리가 큰 이유다.
아이들에게 등원 시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고 하자 없다며 그냥 나오거나, 몇번이나 썼는지 검은 때가 묻은 것을 그대로 쓰거나, 공사장에서 일한 부모의 어른용 방진 마스크를 쓰고 등원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싶어 선생님들이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우체국 앞에 가서 줄 서 있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후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됐지만 우리 아이들과 센터 상황이 나아진 건 크게 없다. 긴급돌봄 아이들의 부모는 그것을 살 시간이 없었고, 아침 일찍부터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우리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군에서 교사들과 아이들을 위한 마스크 지급이 한차례 있었지만 한번 사용하면 끝이었고, 그 외 아이들의 보건부터 교육까지 대부분의 것은 센터가 알아서 하도록 내맡겨진 듯하다.
브래디 미카코가 쓴 <아이들의 계급투쟁>을 보면 ‘저변 탁아소’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 최악의 1%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는 시설’이어서 저자 스스로가 붙인 이름으로, ‘애니’라는 소신 있고 열정적이며 철학이 분명한 이가 운영하는데 애니는 “아이들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 아이들의 부모를 지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코로나19의 위험 속에서도 긴급돌봄을 위해 지역아동센터 문을 연 1% 저변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부모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따뜻한 밥과 간식을 마련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외의 일은 이미 학교의 긴 방학과 개학 연기로 지칠 대로 지친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의 열정에 기댈 뿐이다. 이 시기에 필요한 게 마스크뿐이겠는가.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존엄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때 주어지는 당연한 안온함이 긴급돌봄의 시기에도 부족하더라도 조금씩은 채워질 때, 아이는 내가 속한 공동체는 내가 존엄해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