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 ㅣ 논설위원
아무리 ‘코로나 총선’이라지만 선거판이 묘하다. 총선이 한달여 앞인데 코로나 말고는 정치도, 정책도,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삼무 선거’다. 여야가 모두 코로나에 목매는 형국이 정상은 아니다.
선거는 선거다워야 한다. 지난 3년 실정이 있었다면 심판해야 하고, 앞으로 남은 2년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 심판이 야당 몫이라면, 남은 2년의 설계는 여당 몫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전당원 투표를 통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는 수순으로 가고 있지만, 무엇을 위한 비례연합인지 분명치 않다. 비례연합당은 명분만 부족한 게 아니라 내용이나 실체도 불분명하다. 미래통합당이 가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고 해서 진보개혁 진영도 알맹이 없이 정당을 급조하는 건 곤란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비례연합당이라면 그에 걸맞은 정책연합, 정책적 연대의 실체가 있어야 한다. 도대체 왜 연합하는 것인가? 보수 야권의 과반 또는 1당을 막아서 적폐세력 부활을 저지하고,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막겠다고 한다. 선거는 권력투쟁인 만큼 이 명분도 매우 중요하고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불충분하다. 연합해서 승리하면 뭐가 달라지는 건가? 탄핵을 막고 적폐세력 부활을 막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지금처럼 효능감 떨어지는 국정운영으로 한 2년 좀 더 편하게 가겠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단순히 촛불정부를 지키기 위해 여당을 찍어달라는 건 이젠 면목없는 일이다. 강남 좌파, 586 운동권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이른바 ‘2080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 표를 달랄 수는 없다.
비례연합당이라면 최소한 선거 이후 내각에 연합정당들이 참여할지, 또는 최소 공통분모 공약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이나 그린뉴딜 같은 진보진영의 새 어젠다를 핵심 공약 형태로 제시할 수도 있다. 탄핵 막겠다고 얼렁뚱당 가설정당 세우는 건 곤란하다. 명분에서 밀리고 내용조차 없다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코로나 문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방역이 우리 선진 의료 수준을 세계에 과시하고 있다는 건 사태의 한 측면일 뿐이다. 신천지가 큰 요인이지만 어찌 됐든 방역 실패다. 그 책임은 정부가 가장 무겁게 져야 한다. 마스크 대란은 관료제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애먼 식약처장 불러 다그친다고 마스크 사태가 해결되진 않는다. 관료제의 실패, ‘재난 대응 탁상행정’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면 애초의 약속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인사와 정책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못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애초의 약속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구상들을 좀 더 고민해야 한다. 인사를 쇄신하고 연합정치의 비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 급한 대로 총선 이후 정치를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두어 가지를 약속할 필요가 있다.
첫째, 총선이 준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해 다당제적 성격으로 치러지는 만큼 21대 국회에서는 최소한 국회 총리 추천제라도 도입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국회 총리 추천제는 개헌으로 할 수도 있고, 현행 헌법 내에서도 할 수 있다. 가능하면 올가을 개헌을 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여야 한다. 정부 여당이 주도적으로 21대 국회에서 국회 총리 추천제를 도입할 것을 약속했으면 한다.
둘째,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이 입법안 형태로 제안한 국회개혁 방안을 총선 이후 곧바로 처리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국회 개혁은 온 국민의 숙원사항이다. 문희상표 개혁안은 매월 1일 상시국회 소집, ‘쪽지 예산소위’ 근절, 국회의원 무단 회의 불참 시 수당 삭감 등 비교적 공감대가 넓은 사안들을 담고 있다.
이들 방안은 야당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최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는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총선 이후 최우선 정치개혁 과제로 국회 총리 추천제를 여야가 함께 공약했으면 한다. 국회 개혁 역시 21대 국회 개원 전 20대 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마무리해야 한다.
보수 야당이 코로나에만 매달려 선거에서 기세를 올리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코로나가 여당에 큰 악재지만 경우에 따라선 야당한테 곤혹스러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야당도 3년 실정을 비판하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시름에 잠겨 있어도 정치가 할 일은 해야 한다.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