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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비례위성정당을 비판한다 / 이도흠

등록 2020-03-09 18:28수정 2020-03-10 02:39

이도흠 ㅣ 한양대 국문과 교수

한국 정치에서 현실과 재현 사이의 괴리와 모순을 뜻하는 ‘재현의 위기’는 심각하다. 흑인을 폭력적으로 재현한 드라마가 흑인 차별의 현실을 야기하듯, 현실에서는 진보의 지지층이 최소 10%는 되는데, 이를 국회로 재현한 결과는 정의당 6석, 민중당 1석으로 2.37%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인한 모순은 심대하다. 거대 양당이 과잉 재현되어 권력과 자본을 양분한 채 사실상 ‘적대적 공존’을 해왔다. 반면에 빈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는 물론이거니와 서민, 2300만의 노동자·농민의 목소리는 울타리 밖에서만 맴돌았다. 이러니 이들은 늘 과도한 수탈과 배제의 상황에 있다.

촛불 이후에도 왜 변화가 없는가. 가장 큰 이유는 ‘자본-국가-보수언론-종교권력층-사법부-전문가 집단과 어용지식인’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조금도 균열되지 않았고, 민주당도 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체제, 언론, 교육, 조세체제를 틀어쥐고 자기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치가 분배되도록 시스템과 법, 정책을 조정하고,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구조화하는 이데올로기와 담론을 양산한다. 이를 견제하면서 불평등을 완화하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최상의 대안은 울타리 바깥의 사람들이 권력을 갖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극복할 길이 천신만고 끝에 열렸는데 비례위성정당으로 봉쇄될 판이다. 미래한국당이건, 여당과 교감하는 인사들이 띄운 비례위성정당이건 위헌이자 정당법 위반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참여하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수구세력의 온갖 공작과 몽니에 맞서서 범민주세력이 선거개혁을 성취한 것을 무력화시키는 자기부정이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파괴하려는 미래통합당의 사악하고 반민주적인 정치공작에 가담하는 것이다. 반칙에 반칙으로 맞서는 것이자 촛불에 대한 분명한 배반이다.

이들은 “통합당의 비례의석 25~27석 차지를 통한 제1당 등극과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막자며 현실론을 주장한다. 이는 수구세력이 코로나 공포를 조장하여 총선에서 이기려는 것과 동궤의 공포마케팅이다. 통합당이 200석을 차지하는 일은 현 국면에서 0.01%의 가능성도 없다. 비례의석 25~27석 차지는 합리적 근거 없이 과장된 것이고, 제1당 등극도 4+1 공조를 한 당들이 지역과 비례에서 현재 여론조사와 현격한 차이로 모두 참패해야 가능하다.

이 꼼수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악수다.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제1요인은 프레임인데, 정권심판 프레임이 작동한다. 공수처법도 검찰개혁이 아니라 권력비리 은폐용이며 이를 선거개혁법과 맞바꾸는 야합을 했다는 통합당의 비난이 유권자에게 더 먹힐 것이다. 무엇보다 이 두 법을 악다구니로 반대한 통합당은 ‘개혁의 걸림돌’에서 ‘구국의 결단을 한 정당’으로 전환한다. 민주당의 꼼수 참여에 중도의 59.1%, 민주당 지지층의 48.1%(찬성 40.9%)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비례의석 몇 석 도둑질하려다가 중도의 이탈, ‘극성’을 제외한 민주당 지지자의 냉소, 진보의 분노를 불러, 20대 총선의 3% 미만 경합지역 38석을 기준으로 하면 그 4분의 3인 29석±3석을 내줄 수 있다.

대안은 비례위성정당은 모두 해산하고, 이번 선거법 개혁의 취지대로 ‘소수자를 배려한 릴레이 양보’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비례대표를 내지 말고 정의당은 지역에서 연대한다. 이어서 정의당은 비례대표 자리를 민중당과 녹색당 등 더 소수자인 정당에 양보한다. 그리고 마침 수구세력이 다시 합치고 박근혜가 편지로 판을 깔아준 만큼, ‘도로 국정농단 심판 대 촛불’로 프레임을 짜고 “지역은 민주, 비례는 정의당(소수자 연합)으로 촛불을 완성하자”고 호소하면, 3위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때처럼 한 사람이 수백명을 설득할 것이고, 불참하려던 국민마저 투표장으로 갈 것이다. 결국 진보진영이 비례에서 27석 이상, 민주당이 5% 미만의 양당 경합지역에서 그 4분의 3인 50석가량을 차지하며 범민주진영이 모두 승리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국민들은 정의가 다른 어떤 차이보다 아픔의 차이를 우선시해야 함을 깨달았다. 어렵게 길도 냈으니 이제 그만 소수자들의 피눈물을 닦아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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