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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사드의 변명 / 박병수

등록 2020-02-25 18:28수정 2020-02-26 02:08

박병수 ㅣ 논설위원

국내에서 ‘사드’(THAAD) 문제가 논란이 되면 거의 반사적으로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엠디·MD) 참여·편입’ 문제가 뒤따라서, 종종 둘이 꼭 붙어 다니는 ‘한쌍’처럼 느껴지곤 한다. 얼마 전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이 예산 설명회에서 사드의 성능개량 계획을 밝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성능개량이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망 편입을 겨냥해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맥락을 짚어보면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 편입 논란은 200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가 미국 본토와 동맹국에 미사일방어 구축을 추진하자 러시아 등은 “미-소 간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위반”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김대중 정부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간 갈등이 격화하자 논란 끝에 “미국의 미사일방어에 반대하지도 참여하지도 않겠다”고 밝힌다.

여기엔 당시 중국과 러시아의 거센 반발 말고도,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으로 전쟁 수행능력이 바닥이었고 미사일방어 자체의 군사적 효용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았던 현실 등이 고려됐다. 이후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 불참은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공식입장이 됐다.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 모습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 모습

그럼에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은 건, 무엇보다 미국 당국자들이 틈만 나면 한국의 미사일방어 참여를 독려하거나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해온 반면,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명은 “미국 미사일방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 말곤 별게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7년 사드 배치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맞물려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미군의 전략자산인 사드가 미국 본토나 오키나와, 괌 등 해외 미군기지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중간에서 요격하기 위해 한반도에 전진 배치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국방부는 앞서 2012년 10월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 참여 기준으로 △지상발사요격미사일(GBI) 기지 제공 △엑스밴드 레이더 설치 △미사일방어 공동연구 비용 지급 등 세가지를 제시한 뒤 “우리 군은 어디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사드는 강력한 엑스밴드 레이더로 무장한 탄도탄요격체계이다. 사드 배치로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에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건 당연한 수순인 셈이다.

그러나 과연 문제를 이렇게만 보는 게 타당한 걸까? 국방부가 제시한 기준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타당한 것인지를 둘러싸곤 발표 당시에도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국방부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근거를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작위적인 기준을 제시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군 당국이 미국과 별도로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라는 독자적인 탄도탄요격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체계가 계획대로 2020년대 중반 완성된 뒤 미국의 미사일방어와 별도로 ‘독립적으로’ 작동될 것이라고 믿긴 어렵다.

현대전은 동원 가능한 탐지 자산과 타격 자산, 의사결정 등 모든 전투 단위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으며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네트워크 중심전’이다. 한국형 미사일방어와 미군의 미사일방어라고 예외가 될 이유가 없다. 한-미 간 미사일방어는 ‘상호운용성’이란 이름 아래 그렇게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돼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며 작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에 편입된다고 볼 증거가 아닐까?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 발달 등에 따른 환경 변화를 시야에 넣고 보면, ‘편입’이란 용어가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적당한지에도 의문이 인다.

미군 주도의 네트워크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이제 단순한 정책 의지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 같다. 네트워크가 전쟁수행 방식에서 핵심적 위치에 올라서고 동맹도 이 네트워크에 들어와야 하는 시대라면, 미사일방어를 둘러싼 논의에도 편입 여부를 넘어선 진전된 새로운 틀이 필요하지 않을까.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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