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 생긴 강정고령보에 ‘디아크’라는 전시관이 있다. 원래는 4대강 사업 홍보관이었는데 지금은 강문화관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와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시관은 강과 물, 자연에 대해 사색하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모호하다. 직접적인 4대강 사업 홍보 색채를 걷어내고 강과 문화를 억지스럽게 엮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강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 그림, 노래를 소개하고, 강이 탄생시킨 지역별 인물 소개도 한다.
홍보관을 문화관으로 바꿨다지만, 4대강 홍보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전시실 한쪽 벽에 내건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이 대표적이다. 4대강 사업 당시 강산개조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억지 논리로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홍보해왔다. 어린이 대상 환경교육도 하는 공간에서 아직도 그 강산개조론을 왜곡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도산 선생이 주창했던 것처럼 4대강 사업이 우리 강산을 쓸모 있게 고친 훌륭한 사업이라는 것을 미래 세대에게 교육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의 운영 주체는 4대강 사업을 수행하고 보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비롯한 객관적 조사를 통해 4대강 사업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국책사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일에 앞장섰던 세력은 여전히 과학적 사실조차 부인하고 사업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실패가 교훈이 되려면 먼저 실패를 인정해야 가능하다. 해마다 대구, 서울을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 실패박람회가 열린다. 행정안전부가 시민들의 다양한 실패사례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연다. 실패사례를 살펴 사회자산화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컨설팅도 한다. 4대강 홍보관이 바로 실패박람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4대강 보를 낙동강 12경이라고 자랑하며 어물쩍 자연보호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이 자연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솔직하게 가르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뼈아픈 국책사업 실패 현장이지만, 그래서 환경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현재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선임 절차가 진행 중이다. 임원추천위원회 심사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환경단체들에 따르면, 5명으로 압축된 후보군에 이른바 ‘4대강 사업 A급 찬동 인사’, ‘관피아’와 물개혁정책에 역행하는 인물들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디아크 들머리에 ‘낙동강 새물결’이라는 문구가 이명박 전 대통령 이름과 함께 새겨져 있다. 그 옆으로 ‘4대강 사업 공덕비’가 있다. ‘낙동강을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생명의 새 터전, 지역과 국가 발전의 미래 공간으로 되살린 4대강 살리기 사업 주역들의 이름을 이곳에 새겨 그 공을 기린다’며 수백명의 이름을 새겨놨다. 수자원공사 사장 후보군 가운데 이 공덕비에 새겨진 인물도 들어 있다.
수자원공사는 물정책 실무를 맡는 대표적인 공기업이다. 과거에는 4대강 사업을 수행했지만, 이제는 물개혁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정책의 큰 줄기가 정해져 있어도 결국 일은 사람이 한다. 4대강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들이 이 시점에서 수자원공사 사장 후보라니 물개혁정책의 좌초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남지역 환경단체로 구성된 낙동강네트워크는 성명서에서 “수자원공사 사장은 물관리 일원화, 4대강 자연성 회복, 영풍제련소 문제, 영주댐 문제 등을 개혁적으로 해결하는 데 동의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고 했다. 당연한 요구다.
2년 전 이 자리에 4대강 보를 걷어내고 강물이 순리대로 흐르도록 하자는 글을 썼다. 정부가 공약대로 속도감 있게 그 일을 해줄 것으로 믿었고, 당연히 그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보 처리 방안과 재자연화 추진 일정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물관리 일원화와 같은 물개혁정책이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낙동강 물을 걸러서 그대로 마시는 영남 사람들에게 4대강 사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대로 있으면 올여름에도 ‘낙동강 녹조라떼’는 예약 주문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