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물보다 5배 진하다. 끈끈한 정도인 점도로 따졌을 때 그렇다. 점도는 유체의 흐름에 대한 저항성으로 점성률, 점성계수라고도 한다. 점도는 유체의 종류뿐 아니라 온도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피의 점도는 물보다 5배가량 높다고 한다.
피가 더 진한 것은 물에 없는 밀도 높은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핏속에는 혈구(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가 들어 있다. 이들 성분 때문에 물보다 진하고 무게도 당연히 많이 나간다. 같은 부피에서 물의 무게가 1이라면 피는 1.06 수준이다.
피로 맺어진 가족의 정은 어느 것 못지않게 깊다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는데, 돈으로 얽힌 이해관계가 혈연의 가족관계를 압도하는 일이 가끔 벌어진다. 재벌기업 가문에서는 더 잦은 듯하다. 형제간 다툼은 밖으로 불거진 것만 해도 드물지 않고 부자간 분쟁도 있었다. 한진그룹 총수 가문에서 일어난 ‘남매의 난’이 사례 하나를 더한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경영권을 둘러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분쟁은 3월 상장회사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외부세력을 포함한 양쪽의 지분이 각각 30% 초반대로 엇비슷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피나 물 같은 유체에 비유하자면 양쪽의 ‘농도’는 비슷해 싸움의 판가름은 우군 세력의 결합력과 제3지대 주주들을 끌어당길 끈끈한 ‘점도’에 달려 있다고 봐야겠다.
돈이 뭐라고 가족끼리 싸움질이냐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돌릴 일만은 아니다. 거대 기업의 경영권 향방을 놓고 벌어지는 일이 당사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뜻밖의 긍정적인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재벌기업과 가문의 문제점을 스스로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제3자인 기관, 소액 개인 투자자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점도 경쟁’의 과정에서 기업 경영 방식에 미미하게라도 변화가 일 수 있다. 누나 쪽이 외부 전문가를 경영인으로 내세우겠다고 밝히자, 동생 쪽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 분리를 비롯한 쇄신안을 내놓은 게 작은 징후다. 그런 싸움이라면 중도에 멈추지 말고 부디 끝까지 이어갈 일이다. 건투를 빈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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