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SNS에서 제일 심한 욕 중 하나가 가르치려 든다는 말인 듯하다. 고상하게 계몽주의라는 말도 쓴다. 최대한의 비난을 담아서다.” 노혜경 시인이 최근 출간한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라는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글쟁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말이니까요. 물론 저도 그런 비난을 많이 받아 보았지요.
나이가 들수록 생기는 콤플렉스가 하나 있습니다. “내가 지금 시대착오적인 꼰대 짓을 하는 건 아닌가?” 늘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지요.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의실 밖에서도 남을 가르치는 듯한 말투를 쓰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댓글을 볼 때마다 무조건 반성하자는 자세를 취하곤 합니다. 최근 경어체의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런 반성의 뜻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애쓸 생각입니다만, 제3자의 입장에선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더군요. 제 글이 아닌 다른 필자들의 글이나 관련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선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댓글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찾아내 그 용법을 자세히 살펴보았지요.
이 댓글들은 대부분 필자의 ‘말하는(글 쓰는) 방식’을 문제 삼는 게 아니었습니다.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요구는 사실상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하지 말라”는 비난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높습니다. 사이버공간을 화장실로 만들려는 일부 배설형 누리꾼들을 제외하곤, 댓글 작성 시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해선 안 된다는 정도의 양식은 지킬 정도로 높습니다. 그래서 내심 하고 싶은 그 말을 당당한 자세로 돌려 말하는 게 바로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비난이라는 게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말은 주로 두 가지 조건 아래서 발설되더군요. 첫째, 글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가 날 때. 둘째, 글 내용에 이성적으로 반박하기 어려울 때. 말싸움을 하다가 여의치 않을 때 “너 몇 살이야”라고 싸움의 주제를 바꿔치기하면서 엉뚱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그런 고전적 수법과 비슷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동의하는 내용일지라도 메시지 전달자의 소통 방식을 문제 삼아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말이 나올 법한데,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더군요. 권위를 내세우며 가르칠 뿐만 아니라 아예 행동강령까지 제시하는 선동은 가르침을 넘어선 ‘조종’이지요. 그럼에도 그 내용이 마음에 들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물론 존경하는 자세마저 취하더군요. 저는 실제로 특정 정치집단 선동가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서 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곤 합니다. 그 어떤 ‘신앙 공동체’에 속한 사람처럼 보여 할 말을 잃은 채 그냥 미소로 답을 대신하지요.
그렇다면 어떤 가르침이냐가 문제일 뿐 가르침 자체엔 죄가 없는 것이겠지요. 국어사전은 가르침을 “도리나 지식, 사상, 기술 따위를 알게 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문제는 늘 정답이 없는 ‘도리’나 ‘사상’의 영역에서 일어나지요. 모든 주장은 가르침입니다. “가르치려 들지 말라”는 말도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이진 않습니다. 서로 가르침을 주고받지요.
디지털 혁명은 위계 없는 가르침을 주고받을 수 있는 쌍방향 세계를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을 들고나온 지 20년이 됐지요. 이제 우리는 ‘우리가 미디어’요 ‘모두가 작가, 모두가 청중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시대에서 가르침을 탓하는 건 우리 모두 자기주장은 삼가야 한다는 요구와 무엇이 다를까요.
우리는 학생 시절 일방적인 주입식 가르침에 덴 상흔이 남아 있어 ‘가르침’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마련이지요. 그 상흔에 호소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이제 그만두는 게 어떨까요.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고 늘 가르침을 받아야 할 입장이라는 피해의식이나 겸손도 버리는 게 좋지 않을지요. 이 또한 가르침이겠습니다만, 제 주장은 가르침 자체를 탓할 게 아니라 서로 왕성하게 가르침을 주고받자는 겁니다.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화내는 당신, 부디 배울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