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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케이팝 암표상, 누가 방치하는가 / 미묘

등록 2020-02-07 18:31수정 2020-02-08 02:33

미묘 ㅣ <아이돌로지> 편집장

최근 한 케이팝 기획사가 공연장에 얼굴인식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전용 애플리케이션에 얼굴 사진을 등록해 입장 때 본인 여부를 인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심각해진 암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일본에서도 활용되는 사례가 있다. 일견, 첨단기술을 활용한 고무적 사례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팬들의 반발은 심했다. 얼굴인식 기술의 정확성이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또한 연예기획사가 얼굴처럼 민감한 수준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적절하냐 하는 의문도 제기되었다.

케이팝 공연 표 구하기가 힘들다는 건 오래된 이야기다. 팬들은 공연 예매를 위해 특별히 빠른 인터넷 회선과 프로게이머 장비를 동원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기 아티스트 콘서트는 예매 개시 불과 몇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들이 몰리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전부는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매진 이후 고액의 프리미엄을 붙여 표를 되파는 일은 거의 모든 콘서트에서 반복되고, 암표는 수백만원에도 이른다. 자동화 프로그램이 동원된다는 지적도 꾸준히 있고, 심지어는 이런 프로그램 자체가 몇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상대가 자동화 프로그램이니 매진에 이르는 시간은 더욱 단축된다. 따라서 예매 경쟁은 더 심해지고, 그러니 암표의 수요도 더 커지는 악순환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팬들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가의 암표를 구매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주최 측도 대책을 고민하지만 시행착오로 인한 불편 역시 팬들 몫이다. 입장권 실명제를 도입한 경우 신분증을 지참해야 하는 일도 생기는데, 위조를 막기 위해 신분증 사본을 인정하지 않아 입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신분증이 없는 청소년이나 부모 명의로 예매한 경우 가족관계증명서 대조까지 필요로 하기도 한다. 큰 공연이 있을 때마다 인터넷에는 사기 피해를 호소하거나 공연장에 입장하지 못했다는 애타는 목소리가 쏟아지곤 한다.

아티스트와 기획사 입장에서도 암표가 달가울 리는 없다.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아티스트들이 암표를 절대 구매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렇다고 표가 팔리지 않는다면 공연장이 비게 되니 이 역시 골치일 수밖에 없다. 최근 백예린과 그의 소속사 블루바이닐은 암표 매물을 제보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하고, 팬들이 암표를 사야 한다면 차라리 공연 회차를 늘리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암표 가격이 높다고 주최 측의 수익이 늘어날 리도 없고, 급하게 공연을 늘리면 일정과 예산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몇몇 아티스트는 빠른 매진에 고무돼 회차를 늘렸다가 공연 직전 대량의 취소 표로 손해를 보고 객석도 빈 경우가 있다. 한두 아티스트가 손해를 거듭하며 해결되길 기대하고 있기는 어려운 이유다.

공연 산업에서 암표나 양도표는 늘 있는 상수인 것도 사실이다. 개개인이 한두장의 표를 사서 되파는 것까지 모두 차단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암표가 이처럼 본격화해 모두가 피해를 본다면 해결책이 필요하다. 세계적 수준의 케이팝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해결의 부담은 주최 측의 기술에 내맡겨지거나, 팬들에게 주어져서는 곤란하다. 암표상들이 이용하는 자동화 프로그램만이라도 예매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곧 차단을 우회하겠지만 플랫폼이 이를 다시 차단하는 지겨운 싸움을 해줄 수밖에 없다. 인터넷상의 보안이란 게 그런 것 아니겠는가. 플랫폼의 보안 수준이 암표 구매를 위한 자동화 프로그램을 차단하지 못하는 정도라면, 예매자의 개인정보를 안심하고 맡겨도 되는지도 의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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