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인
국제뉴스팀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새로운 신이 강림했다. 공포에 휩싸인 인류는 속죄양을 찾아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다급해진 중국 정부는 지난달 23일 우한을 ‘제물’로 바쳤다. 이른바 ‘우한 봉쇄’다. 인구 1100만명 도시의 앞뒤를 막는 극약처방에 대해 사람들은 효험이 있기를 기도하며 안도했다. 중국 일부 지역에선 우한에서 온 사실을 숨기는 사람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의 낙후된 인권 수준을 비판하던 서구에서도 자칫 인도주의적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는 이 조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찾기가 어렵다. 중국인과 세계인 모두에게, 링거 하나에 의존해 퀭한 눈으로 등받이도 없는 병원 의자에 앉아 있는 우한의 환자들은 외면하고 싶은 타자일 뿐이다.
미국은 우한과 후베이성뿐 아니라 중국 전체를 신종 코로나의 제단 위에 올렸다. 2일(현지시각)부터 최근 2주간 중국을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최소한 미국 주류 언론에서조차 이번 조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침묵이 두렵다.
한국에선 일부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이 신종 감염증을 대중의 공포와 반중 정서를 부추기는 땔감으로 쓰고 있다. <조선일보>는 신문의 머리띠가 여전히 ‘우한 폐렴’이다. ‘신종 코로나’로 쓰는 것은 중국 눈치 보기라고 주장하니, 그 편협함이 놀라울 뿐이다. 초기엔 언론에서 ‘우한 폐렴’이란 용어 사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의 언론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쓴다. 우한이란 특정 지역을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는 뜻일 게다. 그래도 <조선일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초기부터 중국인 전체를 입국금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사회·경제·정치·외교적 갈등과 비용은 어느 정도일지 진지하게 따져본 흔적은 없어 보인다. 이들에게 우한은, 그리고 공포감 조성은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한’ 문재인 정부를 몰아붙이는 주요 수단이다.
공포 바이러스에 맞설 수 있는 심리적 면역체계는 이성적이고 냉정한 대응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어기제는 국제사회 전체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중국 정부와의 밀착을 의심받으며 권위가 떨어졌다. 주요 7개국(G7) 보건장관들이 지난 3일 여행 규제와 예방법 등을 조율해나가기로 했지만, 원론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은 다자기구를 통해 국제 공조를 끌어내기보다는, ‘중국을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 금지’라는 초강수를 두며 공포 바이러스의 ‘슈퍼 전파자’ 노릇을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만 잘살고 보자’며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가 뿌리를 내린 탓인지, 미국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국경통제를 별 저항감 없이 수용하며 일부는 그 조처를 뒤따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테러리스트들’이라는 명분으로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고, ‘중남미 이민자는 범죄자들’이라는 논리로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을 설치하는 것과 이번 조처가 겹쳐진다. ‘모든 중국인은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심각한 편견이 저간에 깔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중의 공포, 혐오, 인종차별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자양분이다.
전쟁이나 재앙 앞에서 공포감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포감 덕분에 원시시대엔 사자 같은 상위 포식자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공포감이 있으니 위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공포감이 지나치면 희생양을 찾게 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차별과 혐오가 지배하게 된다. 어느 순간에 본인이 그 대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미 중국인과 아시아인을 동일시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빨라진 정보 유통과 방대해진 정보의 양이 공포감을 줄이는 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도 확인됐다. 결국, 각자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포는 유지하면서 타자의 생존과 존엄성을 파괴할 수 있는 과잉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유일한 면역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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