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6번째 확진자가 나온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 복지신정충전소에서 서울개인택시복지법인 직원들이 택시 안팎을 소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 같은 전염병의 대표 격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에서 비롯되는 공포감도 작지 않다. 지금 여기서 겪는 당대성, 사태의 전개 방향을 알 수 없다는 미지와 무지에서 비롯되는 불안 탓이다. 국내에서만 한 해 결핵, 독감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각각 2천명을 웃돈다는 통계치 제시가 불안감을 줄이지는 못한다.
막연한 두려움에 더해 세계가 교역과 정보망으로 촘촘히 얽혀 바이러스가 빠르게 번지고 곧바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합리적 이유도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국내 형편만 보면, 경제적 파장이야 크게 걱정할 게 있을까 싶다가도 사태의 진원지인 중국 쪽 사정을 보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감염증 사태 때 으레 비교 대상으로 불려 나오는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에 견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이 네 배쯤 커진데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가 훨씬 끈끈해졌기 때문이다.
사스 사태 당시인 2003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8%로 2002년 7.2%, 2004년 4.6%보다 많이 낮았다. 메르스 발병 시기인 2015년 성장률은 2.6%였다. 관광, 외식업이 멍들고 소비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다른 요인들이 섞여 있었을 테지만, 전염병 확산이 1~2분기 동안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 결과다.
전염병의 경제적 영향을 글로벌 차원으로 넓혀 좀 달리 본 시각도 있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의 분석 자료다. 1981년 에이즈 발병 이후 전세계적으로 생겨난 13건의 감염병 사태 뒤 글로벌 주식시장 동향(모건스탠리 월드 인덱스)을 살펴본 결과 1, 3, 6개월 수익률이 각각 0.44%, 3.08%, 8.50%였다. 석 달가량 지난 뒤부터 회복세를 보인 모양새다. 이 연구원은 “2000년 이후 감염병 공포가 경기 방향성을 바꾼 경우는 없었다”고 풀이했다.
사스에 견줘 신종 코로나의 전파 속도가 빠르다고 하니 예단하기는 이르다. 국내외 방역의 성패에 크게 좌우될 것이란 사정도 있다. 하지만, 앞서 겪은 유사 사례들의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전염병 자체가 거시경제 흐름을 거꾸로 되돌릴 정도로 치명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에 대해 들은 전문가들의 설명 중에서 귀에 꽂힌 두 가지가 있다. 젊고 건강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으며, 오히려 과도한 면역 반응 탓에 감염 때 폐에 심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고 한 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방역당국의 임상 보고로 어린아이들일수록 감염 때 심하게 앓지 않고 비교적 가볍게 지나가는 경향을 띤다고 알려진 대목이다.
통상적인 짐작과는 많이 달라 보이는 바이러스의 두 속성이 우리에게 오만하지도, 과한 공포에 짓눌리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듯하다. 전염병의 경제적 파장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나 예상 역시 여기서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중국 쪽 사망자 수가 사스 사태 때를 넘어서고 미국 언론에서 ‘세계적 대유행이 될 것’이라는 경고음이 나온 시점에서 마침 국내에선 ‘첫 완치 사례를 기대할 수 있다’는 희소식이 동시에 들려왔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고, 전문가들이 경고했듯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은 자연을 황폐화한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환경 전염병”(<자연의 역습, 환경 전염병>, 마크 제롬 월터스)이니, 이 사태 뒤에 또 다른 전염병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터다. “인간의 건강과 자연계의 운명은 떼어놓을 수 없어 자연적인 경계선을 보존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부는 지극히 옳으나 지극히 지키기 어려운 ‘성장의 덫’에 빠진 데 따른 숙명이다.
궁극의 해법으로 여겨지는 올바른 당위가 실천의 영역에선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꿈으로만 여겨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허탈과 무력감, 두려움 대신 당장의 생활 현장에서 기본을 지키고 일상성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개인의 자세가, 국가 차원의 방역과 맞물려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시기를 앞당길 것이라 믿는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온갖 복잡한 설명 뒤에 따라붙는 당부라는 게 결국 손 잘 씻고 컨디션 조절 잘하라는 것이니 그리 어려운 숙제는 아니지 않은가.
김영배 ㅣ 논설위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