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백기철 <한겨레>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엽기 수석’이자 정치권의 ‘마당발’로 통하는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을 만나 막바지로 치닫는 20대 국회를 결산해봤다. 평소 걸쭉한 입심으로 정치 난맥상을 꼬집던 그지만, 국회 사무총장이란 자리 탓인지 대화는 좀더 심층적이었다. ‘양김 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정치의 중심을 지키려 애썼던 ‘노무현의 정무수석’답게, 유 총장은 ‘분열된 정치’를 안타까워했다. 정치가 국민을 통합하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유 총장은 “미흡하나마 선거법이 바뀐 만큼 이에 조응해서 ‘국회 총리추천제’ 정도는 해야 한다”며 “21대 국회가 구성되는 올해 가을이 개헌의 적기”라고 말했다. 그는 4월 총선과 관련해 “87년 체제에선 대통령 임기 4년 차에 여당은 참패하는 게 정상인데 이만큼이라도 버텨내는 게 신기할 정도”라며 “예측하기가 어렵다. 앞으로 하기 나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하는 국회’를 위한 방안과 관련해서는 “영국의 독립기구인 의회윤리청(IPSA)과 같은 기구를 설치해 의원들의 세비나 의회 운영 방안 등을 결정하고 감시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진행됐다.
- 20대 국회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20대 국회 전체를 최악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20대 전반기에는 국회의원의 70%를 넘는 230여명의 찬성으로 탄핵이 통과됐다. 20대 국회의 큰 업적으로 봐야 한다. 20대 후반기는 국회 모습이 아니었다. 선진화법 이후 처음으로 동물국회가 재연되고 회의는 거의 열리지 않았다. 거리정치, 삭발, 단식, 농성으로 점철되면서 대화가 단절됐다. 20대 국회는 전반기 후반기를 나눠서 봐야 하는 것 같다.”
- 국회가 마무리될 때면 왜 항상 최악이란 평을 듣는 것인가?
“제도 문제라고 본다. 대통령중심제에선 5년 내내 국회가 어떻게 하면 다음 정권을 탈환해 올 것이냐는 투쟁의 장이 돼버린다. 선거제도도 소선거구제로 승자독식, 즉 한 표만 더 얻으면 100을 갖는 제도다. 선거 때마다 50%씩 물갈이를 해서 명망 있는 사람들이 들어와도 4년만 지나면 다 똑같은 놈이 돼버린다. 그렇게 물갈이 한다고 해서 나아진 게 있나. 성찰을 해야 한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정치가 신뢰를 못 받으면 공동체 앞날은 암담해지는 거다.”
- 시급한 제도 개선 방안은 무엇인가?
“협치의 국회가 되려면 승자독식 대신 다당제가 가능한 선거제도로 가야 한다. 거기에 맞는 궁합은 대통령중심제는 아니다. 의회와 권력을 나눠 갖는 제도로 가야 한다. 오래전부터 이런 주장을 해왔다. 다만 분권의 정치는 선거제도와 함수관계가 있다. 독일처럼 100% 비례성을 갖는 선거제도에선 내각제가 맞다. 이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주 조금 도입됐는데, 이 정도로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기에도 미흡하다. 그래도 발을 뗐으니 국회 총리추천제 정도의 조응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 선거법이 개정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는데 협치, 다당제 쪽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많이 미흡한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비례대표 30석에 연동형 캡을 씌우면 지금처럼 41~42% 득표 정당이 과반 의석을 갖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과반 정당이 없다는 건 이번의 ‘4+1’처럼 다수연합을 만드는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국회 총리추천제를 도입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지금 정도의 아주 미흡한 선거법으로는 국회가 총리를 복수 추천해서 대통령이 결정하는, 국회 총리추천제 정도가 가능하다. 국회 다수파가 추천하는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인데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 현 정부 임기 내에 개헌 동력이 다시 생길까?
“21대 국회를 구성한 뒤 1년간, 올가을이 개헌의 적기라고 본다. 올해 연말까지 개헌을 마치면 된다. 21대 국회 구성을 봐야겠지만 총리추천제 정도는 해야 한다고 본다.”
-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의 통일성을 해치고 권력을 떼어줘야 하는 총리추천제를 받을까?
“대통령 후보 시절 대통령중심제가 소신이지만 정치권이 합의하면 권력구조 개헌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2018년 12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단식 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개헌 얘기를 꺼냈다. 얼마 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개헌을 거론했다. 총리추천제 정도는 많은 공감대가 있을 것으로 본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그럴 것이다.”
- 총리추천제를 하려면 꼭 개헌이 필요한가?
“개헌을 안 해도 할 수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선거제도를 바꿔주면 국회의 다수 연합에 총리 추천권을 드리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개헌을 안 하고도 할 수는 있지만 개헌을 하는 게 더 명료할 것이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1년6개월여 국회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힘센 총장’으로서 종전 관행을 많이 바꿨다고 들었다.
“취임하니 맨 처음에 연구용역 달라고 그렇게 오더라. 2천만원짜리인데, 말하자면 호떡 하나 달라는 거다. 아예 논문 제목까지 써 가지고 오더라. 우리가 필요해서 용역을 주는 건데, 사람이 와서 이거 하나 할 테니 돈 달라는 거다. 이것이 국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예산에서 연구용역비 집행 실태를 종합적으로 한번 봐야 한다.
연구용역 5억2천만원을 어디다 위탁하는 게 몇십년 된 관행으로 있더라. 의정발전연구회라고 전두환 정권 때 학자들 순치하려고 만든 것이다. 대학원과 학회 몇몇에 2억원, 1억원 등을 줘왔다. 그거 다 없앴다. 국회 상임위원회에도 한 19억원이 있다. 위원장하고 간사들이 아는 사람한테 호떡 주듯 나눠주던 연구용역 예산을 이제는 심의위원회를 둬서 공모하도록 했다. 하여튼 욕 많이 먹었다.”
- 임기 초반에 특수활동비 파동도 있었다.
“취임하고 얼마 안 있어 특활비 파동이 났다. 재판에서 패소해 정보공개를 해야 하는 거다. 싹 없애라고 난리가 났다. 그때 쓰나미가 오니까 원내대표실 특활비 5천만원을 싹 없애니 운영이 안 됐다. 그 돈을 떼어먹던 게 아니다. 증빙을 해서 써야 하는데, 기획재정부가 지들이 아쉬우니 국회 편하게 영수증도 없이 맘대로 쓰게 한 것이다.”
- 국회의 특활비가 전면 폐지되지는 않았다.
“원래 80억원 있던 걸 정세균 국회의장이 20억원 깎아 60억원으로 했다가 지금 9억8천만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니까 과거에 비하면 10분의 1 정도다. 행정부도 다 없애면 모를까, 어느 기관이고 특활비는 필요하다. 아끼고 아껴서 작년에 그 9억8천만원 중에서도 꽤 많이 남겼을 것이다.”
- 국회 관련 정보공개를 놓고도 논란이 많았다.
“정보공개 소송이 여러 건 들어와 있었다. 보나 마나 패소할 건데 선제적으로 하자고 했다. 초기에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이제는 사무처 직원들이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적극 추진하게 됐다. 국회가 아마 가장 우수한 편에 들 것이다. 과거 비공개해오던 188건 중 135건을 공개로 전환했다. 의원 수당 지급 기준, 의원 해외출장 보고서 같은 19개는 인터넷에 올려 누구든 볼 수 있도록 했다.”
- 검찰과 법원에서 파견하는 전문위원이 문제가 됐다.
“검찰과 법원에서 법사위 개방형 전문위원으로 형식적으로 사직하고 오는 거였다. 법원은 한 십년 됐고, 검찰은 수십년 됐다. 삼권분립 외치면서 법사위 전문위원을 왜 검찰, 법원이 하나. 저항이 심했다. 특히 검찰은 어떻게든 유지해보려고 1년만 연장하자더라. 나 나간 다음에 계속 하려는 거 아니냐고 했다. 끝내 다 돌려보내고 우리 내부 위원으로 충원했다.”
- ‘일하는 국회’도 혁신 과제 중 하나다. 상임위 등에 불참하는 의원이나 정당에 세비를 주지 않는 등의 페널티 방안도 거론됐다.
“유럽에선 의원들이 회의에 빠지면 경제적 손실이 꽤 크더라. 국회의원들은 자기들 손해날 일은 죽어도 안 하려고 한다. 그래서 영국의 독립기구인 의회윤리청 같은 기구를 뒀으면 한다. 의회윤리청이 의원들 세비도 결정하고 예산 집행도 감시한다. 여기서 결정하면 의원들이 따르게 돼 있다. 의원들 세비나 의회 운영 관련해서 페널티를 준다든지 하는 것을 결정하는 독립기구를 뒀으면 좋겠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 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 와중에 정치의 사법화가 극심해졌다.
“이 문제는 국회 사무처가 사건의 당사자여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특위 위원 사보임 문제부터 헌법재판소에서 권한쟁의심판 중이다.”
- 선거법이 게임의 룰인데 보수 야당과 타협이 이뤄지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팀은 협상 의지가 꽤 있었던 것 같더라. 예산안 처리가 첫 단추였는데 의총에서 추인을 받지 못하면서 다 무산된 걸로 안다.”
- 자유한국당은 ‘4+1’ 주도의 선거법 개정이 개악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2015년 중앙선관위가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으로 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권고했다. 그해 말 19대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이던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당시 비례의석 54석의 절반을 연동형으로 하는 중재안을 냈다. 지금 비례의석 47석은 20대 총선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7석이 준 것이다. 당시 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었는데 그거라도 받으려고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융통성 있게 검토했는데 당에 가서 깨져버렸다.
자유한국당이 이번 선거제도가 엄청난 개악이라고 하고, ‘4+1’로 위성정당들이 득세했다는데 돌고 돌아 ‘이병석안’ 정도로 낙착된 거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19대 때 새누리당 정개특위 위원장 중재안 수준으로 겨우 온 거다. 그때는 54석의 절반인데 이번엔 47석 중 30석이니 몇석 더 늘었을 뿐이다. 그걸 뭐 엄청난 야합으로 개악한 것처럼 하는 건 코미디 아닌가.”
- 4월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예측하기 어렵다. 대통령 임기가 만 3년은 안 됐지만 4년 차다. 87년 체제에선 대통령 임기 4년 차에 여당은 패배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어쨌든 이만큼이라도 버텨내는 게 신기할 정도다. 여론조사에서 야당 심판론이 정권 심판론보다 조금 더 나왔다는 식의 얘기들이 있지만 그거 믿었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앞으로 하기 나름일 거라고 본다.”
- 30년 넘게 정치하는 동안 정치철학이 있다면?
“1988년 총선에서 한겨레민주당으로 출마했으니 30년이 넘었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통합시키는 것이다. 지금처럼 극심한 분열, 해방 후 좌우 갈리듯 분열돼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 분열된 공동체는 역사에서 패망의 길로 가지 않았나. 정치가 제 기능을 해서 의회가 국민을 대변하고 갈등을 해소해서 국민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 그동안 정치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별로 보람있는 일을 한 게 없어서.(웃음) 1988년 한겨레민주당 할 때 대선에서 패배한 양김(김대중, 김영삼)이 제각각 우리를 데려가려고 수도권의 절반을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응하지 않고 다 나가서 꼴등을 했다. 정치 입문할 때 그렇게 했다. 김대중 총재가 1996년 총선 앞두고 분당한 것은 그분을 따르던 의원들도 대부분 반대했다. 다들 현실적으로 끌려갔지만 그래도 안 따라가고 남아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를 했다. 그 일원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에 도전한 것을 인정받아 참여정부가 탄생했다. 처음부터 기호 1, 2번 달고 해서 지금 6선, 7선 자랑하는 것보다 선수는 몇번 못 쌓고(14·17·19대 3선) 낭인생활 했지만 삶에는 큰 자산이었던 것 같다.”
유 사무총장은 인터뷰 뒤 저녁 무렵 별도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평소 ‘짐승’이라 부르면서도 허물없이 지내는 편인 언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언론은 평소 정치인들에게 정쟁만 할 게 아니라 정책과 민생을 챙기라고 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정책·법안 보도에 관심이 적다. 어제(지난달 29일) 보건복지위와 국회 사무처 공동 주관으로 보건복지위 법안 및 정책결산 설명회를 했는데 참석 기자 43명 중 국회 출입기자는 15명에 불과했다. 국회에 등록된 기자가 1650명이 넘고 상주 기자가 500~600명인데 고작 15명만 참석했다는 것은 참 씁쓸한 현실이다.”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