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8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가진 연설에서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잠꾸러기 조’라 부르며 조롱했다. 신시내티/로이터 연합뉴스
새해에도 국제사회는 트럼프로 시작해 트럼프로 끝날 것 같다. 지난 18일 미국 하원에서 가결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1월에 상원으로 넘어가나, 아마 부결될 것이다. 탄핵을 넘은 트럼프는 11월 대선까지 질주해, 그 결과로 2020년은 마감될 것이다.
트럼프가 열고 닫을 2020년 내내 그가 최대 변수가 되는 현안들이 지속된다. 한국한테는 가장 중요한 북한 핵협상부터 시작해 미-이란 대결 등 중동분쟁, 무역분쟁 등 미-중 갈등,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상 등이 지뢰처럼 널려 있다.
이 모든 현안은 대선에 임하는 트럼프에 대한 국내의 여론 지지에 그 향방이 크게 좌우될 것이다. 트럼프 지지가 높다면,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비롯한 주요 국제적 갈등 사안들에 대한 재량권이 커진다. 아마 되도록이면 타결과 해소 쪽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왜 미국이 북핵 문제나 국제 현안에 국력을 낭비하며 우리는 돌보지 않느냐’고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미국이 북한이나 이란과 타협해 대결과 갈등을 해소한다면 그 내용이 무엇이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그 지지율이 잘해야 50%를 간신히 넘었고, 지금까지 평균 40% 중반 안팎에서 움직였다. 전후 미국 대통령 중 이렇게 지지율이 낮게 지속된 대통령은 드물다. 하지만 그런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현안을 틀어쥐며 정국을 주도해왔다.
고비는 상원에서 탄핵이 부결된 이후이다. 트럼프는 민주당의 당파성을 맹공하며 자신의 정당성에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트럼프 지지층의 표가 당선의 관건인 공화당 의원들도 트럼프를 중심으로 뭉칠 것이다. 트럼프의 지지율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으나, 그로서는 취임 이후 3년 동안 특검 수사와 탄핵으로 계속된 러시아 스캔들과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털어내는 시점이 이때다.
그가 그 시점에서 어떤 현안에 힘을 집중할지는 지켜봐야겠으나, 올해에 펼쳐놨던 무역분쟁 수습이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진다.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대체하는 미-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의 최종적인 승인 및 최근 ‘가계약’을 맺은 미-중 무역협정의 타결이다. 미-중은 무역문제를 놓고 앞으로도 계속 공방을 벌이겠으나,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대선 가도에서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울 것이다.
만약 트럼프와 시진핑이 무역협정 타결을 계기로 단기간이나마 서로의 위상을 인정하고, 양국의 공통 현안인 북핵과 홍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맞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자. 북핵 협상의 시한은 연말이라고 을러대던 북한은 새해에 들어서면 트럼프의 주의를 끌기 위해 위기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홍콩의 시위대 역시 새해엔 다시 전열을 정비할 것이다. 북핵과 홍콩 문제의 격화는 트럼프와 시진핑에게는 공히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공통의 이해가 있다.
근본적으로 트럼프의 남은 1년은 트럼프 지지로 표출된 중하류층의 분노와 트럼프를 저주하는 기성 엘리트의 반격 중 어느 쪽이 득세할지에 달렸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중하류층은 기존 엘리트들과 정치권이 세계화를 추진하며 그들의 이익만을 챙기면서, 이민자 등 소수 집단을 더 배려하는 정치적 위선으로 치장하고 있다고 분노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기성 엘리트들은 미국의 국익과 패권은 여전히 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고 본다.
이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브렉시트를 놓고 최근 총선에서 보수당에 표를 몰아준 영국에서도 드러난다. 마거릿 대처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의 선도자였던 영국 보수당은 이번에 정부지출의 확대 및 복지체계의 강화를 내세웠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선거 압승 뒤 “비비시(BBC)와 국민건강서비스(NHS)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제도로, 우리가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며 특히 국가의료보험제도인 국민건강서비스에 대한 정부지출 확대를 약속했다.
트럼프도 지난 대선 때 공화당이 단골로 내세우던 노후연금 등 사회보장보험 축소를 뒤집고 그 강화를 내걸었다. 트럼프는 새해에도 중하류층의 분노에 정치적 주파수를 맞출 것이다. 그에 기대어 지지율이 오른다면, 국제현안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거둬들이는 쪽으로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를 안정과 평화 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 한국의 역할과 몫이 커지기를 바랄 뿐이다.
정의길 ㅣ 국제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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