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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칼럼] 막장까지 간 검찰의 압수수색

등록 2019-12-18 18:44수정 2019-12-19 08:46

살아 있는 참고인의 휴대폰도 함부로 압수수색할 수 없는데 어찌 세상을 떠난 이의 휴대폰을 뒤지겠다는 것인가. 하늘나라 사람의 휴대폰을 뒤질 권한은 땅 위의 검찰한테는 없다. 검찰이 자신들의 별건수사 압박을 숨기기 위해 휴대폰을 압수해 갔다면 더욱 천인공노할 일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앞 검찰 깃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i.co.kr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앞 검찰 깃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i.co.kr

오래전 사회부에서 현장 취재 기자로 일하던 시절, 자살 사건을 다룰 기회가 적지 않았다. 그 사건들을 취재하면서 얻은 결론은 ‘한 인간이 세상을 등진 진정한 이유를 알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비눗방울이 꺼지듯 홀연히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워버린 이유가 겉으로 보이는 단순한 몇가지 원인 때문일까. 기사를 쓸 때마다 그런 생각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 인간이 삶의 절벽 끝에서 겪은 외로움과 절망, 슬픔과 상심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제3자가 들어갈 길은 없다. 유서를 남겼다고 해도, 종이쪽지 한두장에 남겨진 글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온전히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결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른바 ‘청와대 하명 수사 사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출두를 앞두고 있다가 갑자기 세상을 등진 전 청와대 특감반원 사건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런데 뒤이어 검찰이 고인의 휴대폰을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에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고인의 휴대폰을 뒤지면 죽음의 원인을 소상히 규명할 수 있다는 사고의 오만함도 놀라웠지만, 세상을 떠난 이의 휴대폰을 강탈하듯이 압수해 간 무도함에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숱한 개인정보가 집적돼 있는 휴대폰은 ‘그 인간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는 참고인의 휴대폰도 함부로 압수수색할 수 없는데 어찌 저세상 사람의 휴대폰을 뒤지겠다는 것인가. 휴대폰에 들어 있는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고인은 설명이나 항변을 할 수 없는 상태다. 하늘나라 사람의 휴대폰을 뒤질 권한은 애초부터 땅 위의 검찰한테는 없다. 세간의 의혹처럼, 검찰이 자신들의 별건수사 압박을 숨기기 위해 휴대폰을 압수해 갔다면 더욱 천인공노할 일이다. 고인은 저세상에서도 자신의 휴대폰 압수수색에 치욕감과 원통함으로 통곡할 것이다.

숨진 특감반원 휴대폰 압수 사건은 갈 데까지 간 검찰의 압수수색 현주소를 웅변한다. 검찰의 무차별적인 압수수색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서 최근의 하명 수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압수수색을 전방위적으로 실시하면 수사는 자꾸만 가지에 가지를 치게 된다. 그러면서 어느 틈엔가 애초의 본가지는 사라지고 곁가지가 본가지가 돼버린다. 그것이 지금 검찰 수사의 모습이다.

검찰은 “정확한 혐의 입증을 위해 압수수색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문제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 의혹 사건’에서 검찰은 경찰이 관련자들의 수상한 돈 흐름을 포착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무차별적 압수수색이 주특기인 검찰이 유독 그 사건 혐의자들에게만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관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친자유한국당 정치성향을 가진 검찰이 김기현 시장의 당선을 위해 경찰 수사를 훼방 놓았을 가능성이다. 둘째, 경찰의 선거개입 문제가 이미 정치쟁점화한 상태에서 훗날 경찰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수사를 무력화시키기로 작정했을 수 있다. 검찰의 해명이 궁금한데, 어찌 됐든 당시 경찰 수사가 직권남용과 선거개입이라면 검찰의 행위는 더 심각한 직권남용에 ‘역선거개입’이 아닐 수 없다.

또 있다. 고래고기 환부 사건에서 경찰이 불법 고래고기 유통업자 쪽 변호사의 사무실과 계좌 등을 압수수색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담당 검사의 선임자였던 해당 변호사와 검찰 간의 은밀한 거래, 전관예우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그런데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이 모든 것이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이라는 잘못된 제도 속에서 합리화되고 있다.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마저 압수수색 대상이 된 작금의 상황을 한걸음 진전이라고 평가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검찰만은 견제와 균형의 사각지대에서 브레이크 없는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무차별적인 압수수색을 당하고 나서 온전히 살아남을 개인과 조직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검찰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만약 지금 검찰 수사 주역들의 사무실과 휴대폰을 압수수색해 들여다보면 어떤 결과가 튀어나올까. 세상을 뒤흔드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다. 검찰은 예전에 유행했던 ‘약 좋다고 남용 말고 약 모르고 오용 말자’는 말을 기억했으면 한다. 압수수색의 오남용은 언젠가 검찰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김종구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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