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윤석열식 정치’ 언제쯤 끝날까 / 석진환

등록 2019-12-04 18:10수정 2019-12-05 16:12

석진환 ㅣ 정치팀장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런 말을 했다.

“(총장 지명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수사는 그만하라는 말이다. 기업을 압수수색한다고 치면,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팀한테 ‘왜 그룹 회장실을 털지 않고 그냥 왔냐’고 다그치는 게 일이다. 반면 검찰총장은 수사팀에 ‘제발 회장실은 털지 말라’고 말리는 자리다.”

7월25일 윤 총장 취임 이후 4개월 이상 흘렀다. 검찰총장 임기가 2년이니 앞으로 남은 날이 훨씬 더 많지만, 지금껏 확인된 윤 총장의 행보는 그때 했던 말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검찰이 진행 중인 주요 사건 수사 곳곳에서 뼛속까지 ‘특수통’인 윤 총장의 디엔에이가 느껴진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검찰의 모든 수사가 윤 총장 스타일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윤 총장이 수사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스타일대로 매우 공격적으로 주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4일에도 검찰은 정권의 핵심부, 기업으로 치면 회장실 격인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의 정당성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처럼 일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윤 총장은 여전히 전국에 흩어진 식재료를 모아 직접 ‘밥상’(사건)을 차리고 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이나, 검찰이 서울로 끌고 온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애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와 관련이 없는 별건이다.

새로 차린 밥상이 아니더라도, 윤 총장 앞에는 차려진 밥상이 너무 많다. 조 전 장관을 상대로 한 수사도 그렇고,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고소·고발 사건도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되는 사안이다. 세월호 참사 재수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 수사도 마찬가지다.

나는 윤 총장이 특정 정치세력에 기울어 있거나, 여의도에서 통용되는 식의 ‘정치적 의도’를 갖고 검찰을 움직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윤 총장이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만은 너무나 분명하다. 큰 수사를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정치적 파장이 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는 사건이 ‘큰 수사’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다. 그저 거침없는 ‘윤석열식 정치’로 인해 ‘서초동 검찰당’의 힘이 여의도와 청와대를 압도하는 형국일 뿐이다. 검찰은 강제 수사권이 있고, 정보도 더 많다. 심지어 “정무적 판단 능력도 검찰이 청와대보다 나은 것 같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비정상적이다.

윤 총장은 이런 힘의 우위를 즐기고 있는 걸까. 윤 총장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청와대를 조준한 듯한 일련의 수사와 관련해 윤 총장은 ‘대통령과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수사 대상에 오른 이들이 ‘집권에 지분이 있지만, 대통령 주변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일종의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윤 총장이 조 전 장관 지명 전에 여러 경로를 통해 반대 의사를 전한 것도 그런 취지라고 한다.

주변 인사들의 이런 전언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윤 총장의 그런 생각과 판단이 충정에 가까운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시 또 다른 ‘윤석열식 정치’일 뿐이다. 가서는 안 될 방향이고, 주어진 책임 바깥의 일이다. 주변에서 대통령을 망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골라내 읍참마속 하는 건 오롯이 집권세력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명백한 범죄인지도 구분하기 힘든 사안을 지금처럼 이 잡듯이 장기간 수사하면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신중하게 골라내지 않고 서둘러 식재료를 모아 급하게 밥상을 차리다 보면 상한 재료가 섞여들 수 있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차려놓고 시간을 끌다 보면 멀쩡한 음식도 상한다. 검찰 조직 전체가 식중독에 걸릴 수도 있다.

연말이 지나고 총선이 다가오면 ‘서초동 검찰당’의 정치적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때에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정치권도 검찰도 서로 감당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의혹이 제기돼 기왕 시작한 수사라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하루빨리 결론을 내야 한다. 지금 검찰에 필요한 건 ‘절제’와 ‘속도’다.

soulf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러다 다음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1.

이러다 다음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2.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북 파병에 ‘강경 일변도’ 윤 정부…국익 전략은 있나 3.

북 파병에 ‘강경 일변도’ 윤 정부…국익 전략은 있나

‘피눈물로 되찾은 정권’이란 미망과 탄핵 [박찬수 칼럼] 4.

‘피눈물로 되찾은 정권’이란 미망과 탄핵 [박찬수 칼럼]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5.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