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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아옌데, 하라, 그리고 칠레 시위 / 김이택

등록 2019-11-12 17:36수정 2019-11-13 02:37

1970년 9월4일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살바도르 아옌데 인민연합 후보가 승리했다. 미국이 바빠졌다.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은 9월15일 중앙정보국(CIA) 국장 리처드 헬름스에게 쿠데타 공작을 지시했다. 키신저는 195만달러의 비용도 승인했다. 중앙정보국은 두개의 팀을 짰다. 1팀은 의회의 당선 확인까지 남은 50일 안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의원들을 상대로 한 정치전, 경제적 압력과 외교적 강경책 등을 동원하기로 했다. 2팀은 군사 쿠데타를 준비했다. 과테말라와 도미니카에서 활약한 브라질지부장을 차출해 전담시켰다.

그럼에도 10월22일 의회는 153 대 35로 아옌데 당선을 확인했다. 아옌데는 이후에도 미 중앙정보국의 퇴진 압박이 높아지자 ‘대통령의 친구들’이라는 비밀부대를 조직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이 부대를 지원했다.(팀 와이너 <잿더미의 유산>)

결국 대선 3년 만인 1973년 9월11일 미국을 등에 업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전투기와 탱크를 앞세워 대통령궁을 공격했다. 아옌데는 국민들에게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남기고 쿠데타군에 총으로 맞서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는 ‘죽음의 캐러밴’이라 이름 붙은 부대를 동원해 3200명 이상을 살해하고 수만명을 감옥에 가둬 고문했다. 칠레의 유명 가수이자 연출가인 빅토르 하라도 축구장에 수용돼 심한 구타를 당한 끝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44발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를 다룬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의 제목은 쿠데타군의 암호명에서 따왔다.

지난달 18일부터 계속되는 칠레 전역의 시위 현장에서는 ‘평화롭게 살 권리’ 등 하라의 노래가 다시 불리고 있다고 한다. 11월 칠레에서 개최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등 국제회의들과 남미 축구 클럽대항전 결승전까지 줄줄이 취소됐다. 시위대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양극화를 부추겼다며 피노체트 독재정권 시절에 만든 헌법의 개정을 요구해왔는데 정부가 뒤늦게 수용 의사를 밝혔다. 23명이나 숨지고 2500여명이 부상을 입은 뒤에야 나온 조처다. 빈부격차 해소를 요구하는 칠레 국민들에게 ‘포퓰리즘’ 운운하는 일각의 주장은 황당하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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