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로지> 편집장 지난달 <한국방송>(KBS) ‘뮤직뱅크’에 출연하는 아이돌 스타들의 ‘출근길’에 관한 소문이 돌았다. 스타들이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방송국에 도착할 때마다 팬들과 기자들이 몰려드는데, 이때 등록된 기자만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출근길 사진’이 원래 팬 문화에서 시작돼 언론도 가세한 것임을 생각하면 팬들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방송>은 해명 공지를 냈다. 팬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해프닝이 돼버렸지만, 아이돌의 ‘출근길’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아이돌의 ‘출근길’은 이들을 따라다니는 ‘사생팬’ 문화와 함께 성장해왔다. 연예매체들이 이 현장에 뛰어들면서 이제는 정례적인 스케줄이 됐다. 포털에 보면 음악방송 출근길 사진은 대량으로 기사화되고 있다. 일정한 성적을 내면 팬 서비스 차원에서 출근길에 이벤트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공항 입출국 시간과 게이트까지 보도자료로 발송하는 기획사도 많다. 팬들이 만들어낸 현상에 언론이 편승하면서 비공식 일정이 공식 일정처럼 변한 것이다. 언론이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종종 팬들의 문화를 흡수한다. 팬들이 궁금해하는 아이돌 멤버 간의 친밀한 관계를 콘텐츠 안에 녹이는 경우도 흔하다. 무대에서 아이돌 멤버 한명을 따라다니며 촬영하는 멤버별 ‘직캠’이나, 여러 무대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편집하는 ‘교차편집’ 영상 등은 방송국이나 인터넷 미디어의 기획에 영감을 주어 새로운 콘텐츠나 스타일을 낳기도 했다.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은 케이팝이 갖는 독특한 강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출근길’에 대해서는 최근 팬들 사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출근길’은 활동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생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무대를 위해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는 시간인데, 여러 시선에 신경을 써야 하고 팬 서비스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고배율 렌즈로 여권이나 휴대폰 화면을 찍는 등 ‘선을 넘는’ 사생활 침해도 이뤄진다. 또한 촬영을 대비한 공간과는 달리 통제에 한계가 있어 사고 위험도 있다. 특히 공항에선 스타들이 팬과 부딪혀 넘어지거나 다치는 일도 곧잘 생긴다. 이미 상당수 아이돌은 공항에 찾아오는 팬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 ‘공출목’이다. 팬덤 내부에서도 의견은 갈리지만, 공항, 방송국 출근길, 사생활 목격(촬영)은 지양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은 말이다. 그에 비해 언론이나 기획사들도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경쟁적 보도를 이어가면서 아이돌의 사생활 노출을 당연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돌의 출근길이 취재 대상이 되는 공식 일정이라면, 팬들이 그 현장을 찾아가는 것을 자제할 이유도 없다. 위에서 언급한 ‘뮤직뱅크’ 출근길 논란이 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론이 ‘출근길’을 공식 일정으로 여기고 취재 경쟁을 계속하는데, 왜 팬들만 배제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아이돌 스타들의 출근길 사진을 찍으며 열광하던 팬들은 무리한 촬영을 자제하자는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지만, 언론이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외려 이런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이는 책임있는 행동이 아닌 만큼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대중의 관심과 아이돌 스타의 사생활 사이의 선은 어디에 어떻게 그어져야 하는지, 그런 맥락에서 아이돌의 ‘출근길’은 어떻게 배려해줘야 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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