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정책경제 에디터
올해 추석은 내년도 대학 수시 전형 접수가 막 끝난 뒤였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수험생을 둔 매제에게 물었다. “원서는 잘 넣었어?” “그냥 적당한 곳에….” 수험생 조카에 대한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명절 때 금기 중 하나가 자녀 진학 이야기라는데. 더는 진상짓을 말아야 했다. 가뜩이나 조국 장관 딸 입시 특혜 논란으로 심란할 텐데.
대한민국 중산층 가정에서 자녀 교육과 집 문제는 필생의 화두다. 이 두 문제를 잘 풀면 그럭저럭 성공한 인생이라 믿는다. 하지만 주장과 해법은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백인백색이다. 공동체적 해법을 찾는 게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내 아이들은 요즘 도마에 오른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수혜자다. 첫째가 입시를 치를 땐 입학사정관제가 학종으로 바뀌면서 이른바 ‘부모 효과’를 차단하는 금지 사항이 확 늘었다. 원칙적으로 교내 활동 이외의 외부 실적을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 아예 활용하지 못하게 됐다. 각종 경시대회 성적과 토플 점수, 외부 수상경력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스펙 부족을 불안해하던 첫째는 좋아라 했다. 아내는 지금도 첫째의 합격은 “교육부 덕분”이라고 말한다. 둘째는 3년 내내 학생부에 의류·패션 분야를 장래 희망으로 적었다. 자소서도 패션 관련 동아리·봉사 활동으로 도배를 했다. 내신이 많이 달린다며 불안해하던 둘째는 “학생부와 자소서 덕분에 붙었다”고 믿고 있다.
민망스럽게 ‘학종 성공기’를 자랑하려는 건 아니다. 학종은 애초 취지에 맞게 지속적으로 보완·수정하며 변화해왔다. 여전히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이 있지만, 다른 입시 제도에 견줘 평범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차선의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학종의 전신인 입학사정관제가 10여년 전 처음 도입된 뒤 전국의 일반고는 동토의 땅이 됐다. 애초 취지와 달리 특목고 우대 전형과 다름없이 운용되면서 과학고·외국어고·자사고 출신들이 주요 명문대 합격자의 60~70%를 웃돌았다. 고입 때부터 너도나도 각종 특목고로 빠졌고, 거기에서 탈락한 이들은 강남과 목동으로 몰렸다. ‘일반고에선 인서울도 어렵다’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단지 입시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반고는 마치 ‘루저들의 집합소’처럼 취급되고 학습권 자체를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현재의 입시 제도에서 흙수저에게 더 유리한 전형은 없다. 기회의 공정이 결과의 공정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요즘 도마에 오른 학종의 비교과뿐 아니라 내신도 수능도 모두 부모 효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수많은 연구로 입증되고 있다. 어느 것이 좀 더 불리하고, 덜 불리한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학종 논란이 정시냐 수시냐로 흐르는 건 잘못된 번지수다. 문제의 핵심은 고교 서열화와 학벌 대물림 문제요, 그 해법은 공교육 정상화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사는 일산의 어느 일반고는 ‘고3 남학생 문과반’을 분리 수용한다. 학년별로 같은 층에 교실을 두기 마련인데, 남학생 문과반만 다른 층에 교실을 배정했다. 면학 분위기를 흐린다는 게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입시’를 말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교과와 내신 전형을 더 늘려 학교의 권한과 책임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특권 학교의 특혜는 줄이고, 일반고와 지방고, 사회적 약자에 더 많은 특혜를 줘야 한다. 외국어고 인기가 시들해진 건 서울대가 이과 지원을 전면 금지한 영향이 가장 컸다. 예컨대, 서울대부터 학교 유형별 합격자 비율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특권 학교의 선발 비율을 정해 단계적으로 낮춰가면 어떨까.
조국 장관의 딸을 두고 ‘그렇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부모들의 분노가 크다고 한다. 이해는 되지만 동의하긴 힘들다. 명문대를 향한 경쟁의 질주 맨 앞 자리에 내 아이를 세워두지 못해 미안한 것이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대입 사다리를 오르고 나면 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사다리 경쟁에서 계속 앞서가야 한다고 부추기는 건 부모가 할 노릇이 아니지 않은가. 그건 희망의 사다리가 아니라 욕망의 사다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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