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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두 번의 정권교체’ 이후의 풍경 / 백기철

등록 2019-09-17 17:36수정 2019-09-17 18:58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간담회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대선을 통해 우리나라도 정권교체를 두 번 이상 한 나라 대열에 끼면서 자못 기대가 컸다.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복수의 정권교체를 이룬 선진 민주국가들처럼 우리도 성숙한 정치로 한 걸음 나아갈 것으로 기대했다. 대선 이후 2년4개월여가 지났지만 그런 바람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1997년 디제이(DJ)의 첫 정권교체가 민주주의로 가는 이정표였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두 번째 정권교체는 성숙한 나라로 가는 주춧돌이라 생각했다. 정당이 여→야→여→야, 또는 야→여→야→여로 자리바꿈하는 두 번의 정권교체는 ‘입장 바꿔 생각하기’ 즉, ‘역지사지’를 수월하게 하고 ‘내로남불’도 줄일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정치는 그런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었다.

자유한국당은 마치 여당을 한 번도 안 해본 것처럼 역대급 ‘어깃장 정치’를 한다. 자기들이 여당 때 만들어놓은 국회선진화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더니, 99일 동안이나 추경을 볼모로 당리당략적 요구들을 쏟아냈다. 야당이 장외투쟁을 상시화하다시피 한 것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내로남불’ 사례가 적지 않다. 야당 때 제출했던 방송법 개정안을 집권 뒤엔 모른 체했고,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하는 걸 두고 이제 와선 사정 변경을 얘기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상황이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 기준, 가치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고위 공직자는 자신의 언행에 분명히 책임져야 한다는 것, 지도자급 인사는 합법·불법 여부를 떠나 국민 눈높이에 맞는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 언론은 어떤 상황에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제1 임무라는 것 등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는 이런 기준에 혼란을 불러왔다. 장관 자격 기준이 불법 행위 여부인지, 태생이나 주변에 의한 언행 불일치를 후보자가 책임져야 하는지, 숱한 의혹 제기만으로 낙마해야 하는지 등의 논란이 이어졌다.

조 장관이 사태 초기 ‘국민에게 죄송하지만 마지막 임무는 완수하고 떠나겠다’고 한 순간 이런 논란은 불가피했다. 평소 그의 언행에 비춰보면 그 말을 한 순간 표표히 학교로 돌아갔음직도 하다. 젊은이들에게 아픔과 상실감을 준 것만으로도 순혈의 ‘진보 논객’이 져야 할 책임의 무게는 막중하다.

‘정치 검찰’ 문제는 조 장관 임명의 불가피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검찰은 초점을 위법 여부로 몰아감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 세상엔 위법 여부에 앞서 보편 잣대로 판단할 문제가 많다. 장제원과 나경원의 자식 논란은 정치 엘리트의 위선, 계급 문제 전반으로까지 논란을 키웠다.

상황이 복잡하고 의견이 갈릴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고위 공직자일수록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는 것, 진보는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스스로 도덕성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조국 사태는 86세대, 강남좌파, 진보, 계급, 개혁 등을 둘러싼 숱한 논란을 낳았지만 애초부터 이런 문제들과 섞일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진보의 나라든 보수의 나라든 보편적 도덕률은 존재한다. 거기엔 진영이나 당파성을 뛰어넘는 보편적 공공선, 보편적 가치가 있다. 그게 없으면 진영에 따라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때로 진실이 무엇인지 혼동되고 가치가 흔들린다 해도 보편적 진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노력을 포기할 순 없다.

두 번의 정권교체를 이룩한 나라답게 조금 더 역지사지하고, 내로남불 하지 않았으면 한다. 현실을 이유로 한 번 세웠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개혁’이란 명제 앞에 조금은 겸손해졌으면 한다. 엄혹한 현실 정치에서 이런 말이 순진한 ‘도덕 타령’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게 치부할 일은 아니다.

진보 엘리트, 86세대라면 누구보다 더 이런 문제를 붙잡고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이들의 존재 이유이자 책무다. 조 장관이 검찰개혁을 추진하면서 국민 앞에 내놓았던 ‘죄송하다’는 말의 무게를 항상 유념했으면 한다. 검찰개혁의 풍향이 잡히는 대로 장관직을 버린다는 각오로 분골쇄신하길 바란다.

백기철
논설위원

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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