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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남북 군비경쟁과 ‘죄수의 딜레마’ / 고명섭

등록 2019-08-28 17:06수정 2019-08-28 19:14

1948년 설립된 미국 랜드연구소는 ‘게임이론’의 산실 노릇을 했다. 여기서 개발된 게임이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죄수의 딜레마’다. 죄수의 딜레마는 범죄 혐의를 받는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방에서 심문을 받는 상황을 가정한다. 두 사람이 모두 범죄를 부인하면 둘 다 최소 형량을 받게 되지만, 둘 다 자백하면 최대 형량을 나눠서 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각각의 죄수는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자백’을 선택한다. 그러나 둘의 형량을 합치면 최대가 돼 전체로 보면 최악의 선택을 한 결과가 되고 만다. 이 ‘죄수의 딜레마’는 국제 정치에서 ‘안보 딜레마’ 상황을 설명하는 데 유력하게 쓰인다. 자기 나라의 안보를 염려해 군비를 증강할 경우, 상대방도 군비 증강에 나섬으로써 결국엔 군비 증강에 나서기 전보다 두 나라의 안보가 더 불안해지는 것이 안보 딜레마다.

이런 딜레마 상황이 한반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북한은 남한의 첨단무기 도입과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비난하면서 7월 이후 일곱 차례나 단거리 미사일과 대구경·초대형 방사포를 쏘아 올렸다. 남한은 2021년까지 F-35A 스텔스 전투기 40대를 들여오기로 하고 이미 여러 대를 들여놨다. 나아가 지난 14일 발표한 국방중기계획에서는 2020년부터 5년 동안 국방비 291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더 많은 국방비를 쓰는 셈이다. 남북 모두 나름의 명분은 있다. 남한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안보 불안을 잠재우려 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에 대비해 재래식 무기 개발을 서두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의 군비경쟁은 죄수의 딜레마와 유사한 불합리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은 지난해 두 차례 공동선언을 통해 군비 감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남북 모두 무엇이 진정으로 한반도 공동이익을 위한 길인지 숙고할 때다. 마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5일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엄청난 돈 낭비’이며 ‘그런 훈련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한반도 군사 긴장을 높이는 한-미 연합훈련부터 대폭 축소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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