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팀 선임기자 “제 엄마가 70대인데 원금 손실도 상관없다는 ‘공격투자형’으로 분류됐네요.” “원금이 천만원씩 계속 줄어드는데도 직원이 안심하라며 만기에 받을 금액을 통장에 적어줬어요.” 금리연계 파생상품인 디엘에스(DLS) 피해자 모임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이다. 이들 파생상품 설명서를 보면 ‘GBP CMS 7y-GBP LIBOR 3m≥0’과 같은 판독하기 힘든 부등식이 복잡한 그래프와 함께 나온다. 사모펀드라고는 하지만 ‘이자율 교환’으로 산출된 이런 상품의 손익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가입한 개인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일부에서는 이번 원금손실 사태를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현실로 나타나면 큰 충격을 주는 ‘꼬리 위험’(Tail Risk)에 비유한다. 자연이나 경제 현상은 대개 발생 확률이 높은 평균값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멀어질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를 이룬다. 발생 확률이 낮은 꼬리 부분은 얇은 형태가 된다. 파생상품을 판 금융회사들은 과거 10여년 동안 데이터를 기준으로 모의실험을 한 결과 손실 날 확률이 0%로 나와 안전할 것으로 봤다고 해명한다. 꼬리 위험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시장에서는 변동성 확대로 양 끝부분이 높아지는 ‘살찐 꼬리 위험’(Fat-Tail Risk)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꼬리가 두터워지면 평균값의 의미가 약해져 예측력이 떨어진다. 이번 금리 파생상품도 판매 전부터 꼬리의 살이 두툼해져 원금보전 구간을 벗어날 확률이 높아진 상황이었다. 세계 경기 침체 우려와 안전자산 쏠림현상으로 유럽과 미국의 장기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단기 금리와 격차가 좁혀지거나 역전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이 일어난 ‘블랙스완’과는 달라 보인다. 중대한 위험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냥 지나치는 ‘회색코뿔소 위험’에 더 가깝다. 육중한 코뿔소가 돌진해오면 진동과 먼지가 일어나 미리 대비할 수 있는데도 위험을 간과하기 쉽다는 게 세계정책연구소 창립자 미셸 부커의 지론이다. 파생상품은 본디 그 뿌리인 기초자산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디엘에스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엔진에 해당하는 게 옵션이다. 1973년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스가 옵션이론(블랙-숄스 모형)을 발표한 이후 수많은 파생상품이 개발됐다. 숄스와 이 연구를 발전시킨 로버트 머튼이 19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으면서 금융공학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주축으로 참여했던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이듬해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으로 파산하고 만다. 그러자 옵션 모형이 갑작스러운 가격 변동에 취약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금융공학을 “수학이라는 가면 뒤에서 벌이는 지적 사기”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디엘에스에 나오는 난해한 부호는 금융 초보자의 눈을 가리는 연막이라는 얘기다.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금융 천재’들의 주장은 리스크를 떠넘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출 중소기업을 부도위기로 몰아넣은 통화옵션 상품 키코(KIKO)가 대표적이다. 환율 하락 때 손실 방어는 물론 상승 때도 환차익을 일부 보전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 다만 환율이 일정 구간을 벗어나면 재앙이 발생한다는 점은 짧게 넘어갔다. 이번 디엘에스도 제조자가 용도를 전용하고 판매자가 남용한 결과, 오용한 구매자가 피해를 떠안은 형국이다. 제로섬 게임이라는 파생시장의 링 위엔 수건을 던진 패자만 있고, 웃고 있는 승자는 숨어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와는 성격이 다른 한 사모펀드를 놓고 공방이 한창이다. 야당의 숱한 공세가 겉도는 듯했는데 투자와 운용 사이에 ‘방화벽’이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조국 펀드’ 논란은 정점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칸막이 규제가 대거 풀리면서 양적 성장으로만 치달은 국내 사모펀드 시장의 꼬리 위험이 양쪽에서 터진 건 아닌지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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