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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이승만 동상 옆의 ‘황교안 출사표’

등록 2019-08-14 18:43수정 2019-08-14 22:16

일본을 숭배하는 숭일(崇日), 일본을 극진히 공경하는 경일(敬日), 일본에 엎드려 절하는 배일(拜日) 정신으로 무장한 세력의 정점에 자유한국당이 있다. 아직도 ‘내선일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정당이 자유한국당이다. 황 대표는 이런 상황부터 정리하고 담화를 내놓았어야 옳다.
김종구
편집인

말씀이나 이야기를 뜻하는 두 한자가 결합된 ‘담화’(談話)는 권위주의적이고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다. ‘담’이라는 글자에는 불(火)이 두 개나 들어 있어 마이크 앞에 선 사람은 뜨겁고 열정적으로 말할지 몰라도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담화’는 주로 높으신 분들의 애용품이다. 특히 앞에 ‘대국민’이라는 관형어가 붙는 담화는 대통령의 전유물에 가깝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4일 국회 본관 중앙홀의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옆에서 ‘광복절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4일 국회 본관 중앙홀의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옆에서 ‘광복절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대국민 담화를 했다. 거의 대통령급 행보다. 기자회견, 대국민 메시지 등의 말을 놔두고 굳이 대국민 담화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에서 황 대표의 살아온 이력과 정서, 태도가 묻어난다.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그렇다. 잘 사는 나라, 모두가 행복한 나라, 미래를 준비하는 나라 등 아름다운 추상적 어휘로 가득 찬 담화 내용도 거의 대통령급이다. 사실 최근 몇 년간 대통령들의 대국민 담화는 말만 담화였을 뿐 실제 내용은 주로 ‘대국민 사과’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황 대표는 ‘고전적’ 의미의 담화를 고스란히 재현한 셈이다.

황 대표가 대국민 담화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이 ‘오버’라면 이승만 동상 옆을 발표 장소로 잡은 것은 ‘난센스’다. 국회 본관 중앙홀에는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해공 신익희 선생 등 다른 분의 동상도 많은데 하필 이승만 전 대통령을 배경으로 삼았을까. 황 대표가 평소 말해온 대로 “위대한 건국의 아버지”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의 발로인지, 자유한국당이 줄곧 주장해온 ‘8·15 건국절’ 제정에 대한 의지의 재표명인지, 아니면 자신의 확고한 이념적 좌표를 드러내기 위한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황 대표가 이날 내세운 핵심가치인 자유·민주·공정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당면 현안으로 떠오른 한-일 문제만 해도 그렇다. 황 대표와 자유한국당은 현 정부의 대일 정책을 “반일 포퓰리즘”이라고 줄곧 비난해왔다. 그런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야말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 정립 노력과는 거리가 멀게 감정적 반일,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포퓰리즘 반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 대표가 이날 힘주어 강조한 ‘안보’와 ‘민생’ 문제에 이르면 더욱 쓴웃음이 나온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한의 기습공격에 허둥댄 것으로도 모자라 대전으로 피신한 상태에서 서울시민들에게 안심하라는 거짓 방송을 했고, 군은 한강 다리를 끊어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을 배경화면으로 펼쳐진 황 대표의 안보·민생 관련 담화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광복절 경축사는 전통적으로 대통령이 대외 정책을 비롯한 국정의 핵심 어젠다를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대표가 이례적으로 ‘선수’를 친 것이 적절한가의 질문은 제쳐놓자. 하지만 황 대표가 광복절 담화를 할 요량이었다면 한-일 관계의 방향, 그리고 일본 문제를 둘러싸고 격화된 내부 갈등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한 ‘담화’를 내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광복 이후 한국 사회는 일제 군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잘못 굳어진 관습과 관행, 문화와 제도, 언어 등 일제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광복 74돌을 맞는 시점에 확인된 ‘우리 안의 일본’은 그 정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친일’이라는 말로는 모자란다. 마음을 다해 일본을 숭배하는 숭일(崇日), 일본을 극진히 공경하는 경일(敬日), 일본을 향해 멀리서도 엎드려 절하는 배일(拜日) 정신으로 무장한 세력이 넘쳐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자유한국당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영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한테 손뼉을 치는 국회의원들이 즐비한 정당, 아직도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정당이 자유한국당이다. 황 대표는 광복절 담화 마이크를 잡기 전에 이런 상황부터 정리해야 옳다.

‘오늘을 이기고 내일로 나아갑시다!’ 황 대표의 대국민 담화 제목이다. 이것은 황 대표의 출사표다. 정치적으로 해석하자면, 이겨야 할 ‘오늘’은 현 집권세력이고, ‘내일’은 자유한국당과 황 대표 자신일 것이다. 하지만 황 대표가 우선 이겨야 할 것은 자유한국당의 오늘이고 보수세력의 오늘이다. 그리고 오늘의 자기 자신이다. 말의 성찬으로 가득 찬 황 대표의 담화가 허무하게만 다가오는 이유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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