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는 7월부터 ‘로봇 실명제’를 시행 중이다. ‘온라인 투명성 강화법’이라는 이 법은 시민의 투표와 구매 행위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를 지닌 로봇(봇)으로 하여금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밝히게 강제하는 규정이다. 로봇이 만든 소셜미디어 계정이나 자동응답 활동이 이용자를 속이는 상황에서 출현한, 로봇 신원확인 규정이다.
법안을 발의한 로버트 허츠버그 상원의원이 제시한 트위터 계정이 본보기다. 이 계정은 자기소개에 “나는 로봇이다. 이 계정처럼 자동화된 아이디는 이용자를 오도하고 착취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로봇이라는 것을 밝힌다”고 정체를 드러낸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각종 봇들이 가짜 계정을 통해 팔로어를 부풀리고, ‘좋아요’와 ‘공유’ 활동을 하며 이용자를 속여왔다. 이 법은 해당 봇을 소유하거나 개발한 사람이 자동화 계정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고, 규정을 어기면 최고 2500달러 벌금을 부과한다. 하지만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플랫폼 제공자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는다.
미국의 전자프런티어재단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모든 봇들이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을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언론 자유와 창의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법은 ‘자동화 봇, 계정 및 그 결과물’을 규제하는데, 소셜미디어에는 뉴스 전송, 자동응답, 배송 안내 등과 같은 다양한 챗봇이 서비스 중이다. 봇과 허위 계정도 때로는 조작자가 개입해 활동하기 때문에 ‘100% 로봇’만 골라내기도 어렵다. 페이스북 같은 거대 사업자는 로봇 실명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지만, 소규모 사업자에겐 비용이 드는 진입장벽일 수 있다.
정부가 ‘제한적 본인확인제’라고 부른 국내 ‘인터넷 실명제’에서 만난 익숙한 장면이다. 로봇 실명제는 실효성 여부를 떠나 로봇과 알고리즘의 영향력을 드러낸다. 로봇에 의한 온라인 여론 왜곡이 배경이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로봇이 아님을 증명하시오”라는 자동화된 튜링테스트(캡차·CAPTCHA)를 통해 끊임없이 ‘인간 증명’을 당하고 있지만, 로봇들은 무사통과였다. 사람들이 로봇을 상대하며 속아왔다는 자각이 ‘로봇 실명제’라는 시도를 만들어냈다. 인터넷 실명제와 다른 경로를 걸을지 궁금하다.
구본권 미래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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