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런던 시장의 이름은 사디크 칸이다. 전형적인 영국 이름으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맞다. 파키스탄 출신 부모를 가진 이민 2세다. 그가 미래의 국무총리감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 런던의 시장이 되기 전에는 국회의원이나 내각 각료 등을 지냈다. 옛 식민지 출신이 과거 식민 ‘모국’ 수도의 시장이 됐다는 것은 좀 예사롭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옛 식민지 출신 정치인들은 영국에서 흔하다. 영국 국회 하원의원 650명 중 52명은 옛 식민지 출신의 종족적 소수자들이다. 이는 대체로 영국에서 옛 식민지 계통 주민들의 인구 비율에 비례한다. 물론 이와 같은 소수자들의 정계 진출이 투쟁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981년의 ‘인종 폭동’, 즉 인종주의로 악명이 높은 경찰과 소수자 사이의 난투극 등 소수자들의 저항에 충격을 받은 영국의 권력자들은, 소수자들의 급진화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그 엘리트들을 기존의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좌우간 차별 문제 등이 완전하게 해소되지는 않았다 해도 영국에서 대대로 살아온 옛 식민지 출신들이 스스로를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난민으로 여기기보다는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민이라고 인식하는 건 사실이다.
제국주의 유산을 완벽하게 청산한 옛 식민 종주국이란 없다. 영국만 해도 문제투성이다. 5년 전 한 여론조사에서 영국인 응답자의 59%가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가치를 확산시킨 대영제국의 역사”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한 반면 “제국주의적 과거에 수치심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19%에 그치고 말았다. 다수자들의 여론이 이렇다 보니 2005년 당시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처럼 가끔가다가 “대영제국에 의한 민주주의 가치의 세계화”를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친제국주의적인 발언들을 하는 정치인들은 있다. 그래도 사실 관계가 분명한 제국주의적 대형 범죄(예컨대 3·1운동보다 약 한달 늦은 1919년의 암리차르 학살)를 부정하는 망언들을 정계에서 듣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보수적 정객이라 해도 옛 식민지에서의 여론과 영국 내부의 소수자들의 시선, 그리고 제국주의의 범죄성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된 의견을 통념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주류 학계를 고려해 말을 잘 걸러서 해야 한다.
굳이 계량화해 ‘과거사 청산’에 대해 옛 식민 종주국들에 점수를 준다면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도 디(D)나 이(E)를 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영국을 현재와 같은 부국으로 만드는 데에 시초 축적의 가능성을 제공한 노예무역 피해자들의 후손들에게 공식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 것부터 커다란 감점 요인이 될 터이다. 대영제국의 노예무역은 1833년에 전면 금지되었다고 하지만, 반인륜적 범죄에 시효란 없다. 그런데 영국이 이(E)를 맞아도 일본은 아예 에프(F)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번 무역 보복 사태에서도 명확히 보이듯이 일본은 식민지 과거 청산에도 옛 식민지 주민들과의 관계 회복에도 완전히 실패했다. 이 역사적 실패는 옛 식민지 피해자들도 분노하게 만들지만 사실 일본 본국의 국운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본같이 자민족 중심의 폐쇄적 사회가 인구 감소의 시대에 불가피하게 들어오게 될 새로운 이민자들을 통합할 수 있을는지 나로서는 극히 의문이다.
탈식민화 이후에 대부분의 옛 제국들은 몇 년 동안이라도 옛 식민지로부터의 이민을 허용했다. 사디크 칸의 부모들은 이렇게 해서 런던에 와서 정착한 것이었다. 일본은 그 반대로 한국이나 대만으로부터의 새로운 이민을 막은 것도 모자라, 이미 일본에 와 있던 옛 식민지 출신들의 국적을 박탈해 피차별 난민으로 만들고 말았다. 옛 식민지 출신들의 정계 진출은 아주 예외적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늘 각종 ‘이지메’가 따라붙는다. 이민자 출신이 예컨대 도쿄 도지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이야기다. 일본에 귀화한 재일 조선인 아라이 쇼케이(원래 이름은 박경재)가 30여년 전에 선구적으로 일본 국회의원이 됐을 때 차후 도쿄 도지사가 된 이시하라 신타로와 같은 극우파들은 “이 사람이 한국의 국익을 선택할지 일본의 국익을 선택할지 알 수 없다”는 식의 인종주의적 차별 발언을 쏟아내며 괴롭혔다. 결국 아라이는 자살로 내몰리게 되고 일본 정계에서 소수자의 대표들은 지금도 극히 예외적이다.
유럽에서는 잘 알려진 개별적인 제국주의 범죄들을 부정하는 망언들을 우파 진영에서도 쉽게 하지 않지만, 일본에서 일본군 성 노예제 등과 관련된 망언들은 보수정계의 ‘일상사’다. 두 세기 전의 노예무역도 아니고, 70여년 전의, 지금도 생존자들이 살아 있는 강제징용과 노예노동마저도 일본은 사과하고 배상하지 않는다. 독일의 폴크스바겐과 지멘스 등은 이미 20여년 전에 전시 강제징용, 노예노동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을 했는데, 일본 업체들은 그 전례를 애써 무시하고 있다. 독일 정부와 기업들은 구체적 피해자들을 개인으로서 배상해 왔지만, 일본은 1965년에 한국 시민들을 어디까지 대표했을지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군사독재 정권에 배상도 아닌 경협 자금과 차관을 건넨 것을 ‘청구권 말소’로 본다. 개개인의 존엄회복권과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배상권, 총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개인의 인권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이런 태도가 피해자와 그 후손들에게 공분을 사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이다. 영국이나 독일의 식민주의, 전쟁 범죄와 관련한 사후 처리도 전혀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본만큼 피해 지역과의 관계 회복에 실패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실은 일본의 바람직한 지역적 미래를 막고 있는 이 문제는, 일본 시민 사회야말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풀어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익을 ‘시민 다수의 이해관계’로 해석한다면 아시아 대륙으로부터의 정서적인 고립은 일본의 국익에 정면으로 위반되기 때문이다.
사실 아베 신조 총리나 일본의 극우들과 무관한 일본 기업 종사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줄 여지가 있는 불매운동보다, 아베에게 저항할 수 있는 일본 사회의 운동 단체들과 연대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야말로 아베의 망동을 극복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일지도 모른다. 불매운동에 나서는 사람들의 정서를 십분 이해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폭주를 막을 주역은 어디까지나 한국 사회가 아닌 일본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로서 제일 중요한 과제라면 한국이라도 아베의 일본을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베의 일본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에 실패했다면, 대한민국이라도 예컨대 베트남에서 저지른 한국군의 학살과 성범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배상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일본이 소수자들의 통합에 실패했다면, 한국이라도 이주민의 절반 이상이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할 정도로 열악한 오늘날 상황을 제대로 개선해 나가면 하나의 큰 쾌거가 되지 않을까? 아베의 일본처럼 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베의 일본에 대한 진정한 승리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