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칼럼니스트 마블 코믹스가 <스파이더맨> 만화책을 선보인 것은 1962년이었다. 마블은 1년 뒤에 <아이언맨>을 내놓았다. 이 시기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만화책의 은의 시대’(Silver Age of Comic Books)라고 불리던 두번째 전성기였다. 1960년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십대 중후반에 접어들었고, 이들에게 소구한 록 음악이나 만화책이 20세기 후반기 대중문화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미국은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의 문화권에 비해 역사가 짧다 보니 다른 문화권에 있는 건국신화가 없다. 그래서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대중영화와 만화 콘텐츠가 이런 건국신화의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광야에 문명을 세우는 백인 이주민과 총잡이들을 다룬 서부영화와 악을 무찌르고 공동체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는 만화 속의 슈퍼히어로들이 고전 신화 속의 영웅 역할을 수행한다. 슈퍼히어로들은 크게 슈퍼맨이나 토르, 아쿠아맨처럼 외계인이나 반신반인인 경우,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본인이 부자여서 특별한 기술을 사용해 능력을 증폭시키는 경우, 그리고 헐크나 캡틴 아메리카같이 평범한 사람이 과학적 실험에 참여하거나 사고를 당해서 초인적인 능력을 얻게 되는 경우로 나뉜다. 스파이더맨은 이 세번째 범주에 포함되는데 그가 십대라는 점이 다른 성인 슈퍼히어로들과 구분된다. 앞서 언급한 십대 후반이 된 베이비붐 세대는 비슷한 연령대의 스파이더맨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에스콰이어> 1965년 9월호의 ‘가장 중요한 28명’(Twenty-Eight People Who Count)이라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은 당시 캘리포니아주의 급진적인 청년들에게 의미있는 인물 28명 중 28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당시 청년들은 스파이더맨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원작에서 스파이더맨이 되는 피터 파커는 뉴욕의 변두리인 퀸스에 살고 과학에 관심이 많은 십대 중반 고등학생인데 그의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뒤에 삼촌 부부와 함께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뉴욕의 퀸스는 인종적으로 가장 다양한 지역이며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한다. 그래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브루클린 출신임을 밝히고 스파이더맨은 퀸스 출신임을 밝히면서 서로에게 계급적 동질감을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삼촌마저 죽은 뒤 피터 파커는 집안의 공과금 납부와 대학교 등록금 마련을 위해 고민하는 힘겨운 청년으로 그려진다. 비슷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꽤 있을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에서 피터 파커는 삼촌이 아닌 고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나온다. 피터 파커는 네드와 단짝인데 네드는 아시아계이자 게임광이다. 피터 파커는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고백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면서 그런 고민을 네드에게 털어놓는다. 남자 주인공과 그의 웃기는 단짝, 그리고 그의 첫사랑이 나오는 것은 미국 십대 드라마에서 쉽게 발견되는 관습이다. <아이언맨>이 나온 지 십년이 지났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은 죽었다. 그가 죽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젊은 관객들은 마치 아버지를 잃은 것같이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을 대신해서 어벤져스의 차기 리더로 지목된 스파이더맨의 부담감과 책임감을 다룬다. 이는 스파이더맨(피터 파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지금 미국의 십대들, 더 나아가 마블의 영향을 받는 전 지구의 밀레니얼 세대가 이전 세대를 밀어내고 앞으로 마블의 주요 소구 대상이자 향유 주체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