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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과잉 편의의 시대 / 김태규

등록 2019-07-21 17:29수정 2019-07-28 17:36

김태규

경제팀 기자

정부세종청사에서 국토교통부의 택시제도 개편안 브리핑이 있던 지난 17일 오전, 그날은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오전 9시에 예정된 브리핑에 들어가려면 7시10분 차가 딱 맞았다. 요금은 1만4600원으로 우등고속보다 2100원, 일반버스보다 5500원 비싸다.

‘도로 위의 퍼스트 클래스’라고 불리는 프리미엄 버스는 2016년 9월부터 운행됐다. 사고라도 나면 전투기 조종석마냥 지붕을 뚫고 비상탈출할 듯이 생긴 21개 좌석(버킷 시트)은 몸통이 두툼하다. 전동식 버튼을 누르면 등받이는 젖혀지고 다리 받침이 올라와 무중력 상태를 선사한다. 옆 사람을 향한 쓸데없는 호기심을 차단하는 좌석별 커튼은 입원병동 다인실을 떠올리게 한다. 회장님처럼 몸을 뉘어도 시야에 들어오는 10.1인치 모니터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내 스마트폰 놔두고 굳이 다른 기계를 만질 필요는 없다. 티엠시, 투 머치 컨비니언스(TMC, Too Much Convenience)다. ‘하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좌석으로 꽉 들어찬 실내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덩치를 뽐내고 있는 21개 ‘어깨깡패’ 사이에 간신히 끼어 가는 느낌이었다.

아침 출근길부터 프리미엄 버스에 ‘시달렸던’ 그날, 국토부가 발표한 택시 개편안을 받아들고 요금 인상부터 걱정됐다. 플랫폼 택시제도에서는 “여성안심, 자녀통학, 실버케어, 관광·통역 지원” 등의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했다. 안전을 보장받고 편의를 원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방식이다. “서비스에 상응하는 요금을 받는 것이고 전체 택시 25만대 중 플랫폼 택시 규모가 절반 이상까지는 아닐 테니” 전반적인 요금 인상을 걱정하진 말라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도 정말 절실하게 택시를 타야 할 때, 길거리에서 손을 들어 ‘배회’하는 택시를 잡기는 쉽지 않다. 급한 마음에 카카오택시를 찾게 되고 일반호출이 안 되면 스마트호출(+1000원)을 해야 하며, 그것도 안 되면 ‘부르면 즉시 온다’는 브랜드 택시(+5000원)를 기다려야 한다. 일반택시보다 요금이 2배 이상 비싼 고급택시도 있다.

서비스가 다양해져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소비자에겐 좋은 일이다. 돈 있는 사람이 더 많이 쓰면 내수경제도 활성화되겠다. 그러나 ‘서비스의 다양화’가 ‘웃돈의 일상화’를 의미한다면 돈 없는 사람에게 삶은 더욱 팍팍해진다. 기본적인 서비스 공급을 위축시켜 경제적 약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건 공정하지 않다.

부자들의 게임인 부동산 시장에선 ‘과잉 편의’가 더욱 당연시되는 것 같다. 분양가 상한제 반대 논리 중 하나가 ‘품질 저하, 부실시공 우려’다. 건설사가 서울 강남에 습기 차고 물 새는 아파트를 지을 것 같진 않은데, 분양가 상한제를 둘러싼 공론장에선 ‘부실시공’ 논리가 버젓이 설파되고 있다. 과한 옵션을 빼고 기본에 충실한 아파트는 부자동네에 들어서면 안 되는 건가. 상한제로 분양가 인상이 억제돼도 서민들에게 강남 입성은 꿈같은 일인데 부자들은 무조건 럭셔리한 최고급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자기보다 돈 없는’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그리고 “서비스에 상응하는” 더 비싼 값으로 판을 키우고 유지하려 한다. ‘과잉 편의’가 이런 시장의 배제와 증식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자본의 지배를 경계했던 사상가 이반 일리치는 “경제발전은 수요화에 의한 노예화이지, 희소성으로부터의 자유화가 아니다”라고 했다. 희소한 게 더 많아질수록, 편의가 과할수록 비용은 늘어나고 경제적 격차에 따른 소외감은 더욱 커진다. ‘수요화로 인한 노예’라는 감정은 가난한 사람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택시제도 개편안 발표 다음 날엔 우등 고속버스를 타고 세종시로 향했다. 1시간30분 동안 나와 ‘한차’를 탈 길동무의 얼굴과 창밖 고속도로의 흐름이 모두 눈에 들어왔다. 세상 쾌적했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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