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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철 칼럼] 도망갈 것인가, 싸울 것인가

등록 2019-07-18 17:46수정 2019-07-18 19:06

언론이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보도·논평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시민은 기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주제에 대해서도 둔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청소년들이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절규하기 시작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아무리 둔하다고 해도 오늘날 세계 최대의 긴급 현안이 기후위기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기는 지구온난화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은 현재와 같은 탄소문명의 계속적인 유지·확대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특권적인 이익이 지켜진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다. 그들을 대변하는 가장 큰 정치세력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와 미국의 공화당이다. 지구사회 전체를 생각하면 이 중요한 시기에 트럼프라는 극단적으로 비상식적인 인간이 미국의 최고 결정권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액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기후변화는 지금 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언론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상황의 절박성이 더 확실히 느껴진다. 지난 수십년간 늘 부차적인 이슈로 밀려나 있던 기후 문제가 최근 들어 세계의 주요 언론들에서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는 핵심 이슈가 된 것이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환경위기에 대해서는 항시 소극적으로 반응해왔던 세계 각지의 크고 작은 ‘좌파’ 언론들도 이제는 날이면 날마다 기후 문제에 대해 다급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유독 한국의 언론들은 태평스럽다. 오늘도 우리 언론들의 지면은 악화된 한-일 관계에 대한 기사와 논평들로 도배되어 있다. 물론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한-일 관계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단지 한-일 간의 역사청산 문제나 외교적 실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나날이 심화되는 환경위기, 자원고갈, 그리고 성장시대의 종식으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시스템의 전반적 기능 부전 상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된다. 흔히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지만, 그동안 한-일 관계가 매끄럽지는 않더라도 이토록 적대적인 관계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았던 주된 이유는 한·일 양국이 어떻게든 경제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장시대가 저물자 일본 지배층의 우경화가 극단화되고,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서툰 대응이 겹쳐져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심층적인 배경을 주목하지는 않고, 여전히 그저 누가 옳고 그른지, 누가 더 손해를 보느냐 마느냐 따위의 매우 감정적이고 수준 낮은 언설들만 난무하는 게 현재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가서는 한-일 관계가 진정으로 개선될 리도 없고, 양쪽 모두 한걸음이라도 더 진전된 사회적 진화를 이루어낼 수 없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나는 모든 게 환경위기 탓이라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 어느 나라든 공통적으로 직면해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난제들은 근본적으로 지구생태계의 붕괴―자연자원의 고갈과 쇠퇴, 토지의 사막화, 대기와 물의 오염, 숲의 파괴, 해양생태계의 파괴, 생물종의 급속한 사멸 등등―와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런 근본적인 사실을 외면하거나 경시하는 한, 난국을 극복하려는 모든 상황 진단과 처방은 초점이 빗나간 헛수고로 끝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이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보도·논평을 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시민은 기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주제에 대해서도 둔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청소년들이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절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가야 할 지구라는 집에 불이 났는데, 어른들이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짓들을 하고 있다고 강력히 항의하면서 긴급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과 보조를 맞춰 서울의 광화문광장에서도 열리고 있는 10대 학생들의 집회는 아직 소규모인데다가 참가자 중 상당수는 외국인학교 학생들이다. 이 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오늘날 청소년들은 어디서든 스마트폰에 빠져 산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 청소년들만 기후위기에 미온적으로 반응하고 있을까. 이는 언론의 직무유기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만일 이와 같은 직무유기가 더 길게 지속된다면, 어차피 생태적 위기로 인해 모든 게 달라질 앞으로의 세상에서 한국 사회는 구제 불능의 낙오자로 떨어질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언론들이 정말 사태의 심각성을 몰라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생태적 위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지금까지 인간사회가 직면해왔던 숱한 난제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난국에 부딪힐 때면 으레 인간사회가 해왔던 방식, 즉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혁신적인 기술을 투입함으로써 돌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종래의 정신습관과 생활관행과 사회적 규칙들을 급진적으로 변환시킴으로써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토록 골치 아픈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가능하다면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심정은 어쩌면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절대적 권력을 누리고 있는 ‘초부유층’도 지금은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이 방면의 뉴스에 의하면, 그들 중 일부는 버려진 지하 핵기지 따위를 매입·개조하여 거대한 인공도시를 건설하여 거기에 거처를 마련할 궁리를 하고 있거나, 혹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예상되는 땅으로 이주할 궁리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는 지구공학을 통해서 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으로 첨단기술 개발에 집중 투자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자들은 우주공간에 공장을 세워 가난한 노동자들을 거기로 보내놓고는 자신들은 지상에서의 안온한 삶을 즐겨보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막강한 금권과 정치적 영향력까지 가진 부호들이 왜 생태적 균형의 복원이라는 건강한 해법을 찾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고, 도망갈 궁리에 열중하고 있을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심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미나마타의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가 말했듯이, 인간정신이 그만큼 ‘쇠약’해졌다는 뜻일까. 그러나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과 책임에 대한 감각이 아직 조금이라도 살아 있다면, 우리가 마땅히 선택해야 하고 또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 하나뿐이다. 즉, 도망가지 않고 싸우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급진적인 사회변혁을 이끌어내는 싸움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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