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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 칼럼] 한-일 갈등, 치킨게임의 시작이라면

등록 2019-07-15 17:29수정 2019-07-15 19:15

일본은 한국을 경쟁 상대로 규정하고 전략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사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빠질 수 있다.

강자에게 힘이 있다면 약자에게는 깡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깡도 보통은 넘는다. 당분간 문재인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줘야 한다.
지난 7일 오사카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를 하는 아베 총리. 연합뉴스
지난 7일 오사카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를 하는 아베 총리. 연합뉴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는 정치 보복이 아니다. 강제징용 판결은 핑계일 뿐이다. 일본은 한국을 경쟁 상대로 규정하고 전략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미국이 견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든 일본은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할 것이다. 수출 규제는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사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빠질 수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과거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깔보는 감정’과 ‘미안한 감정’을 동시에 가졌다. 한국 경제는 일본을 따라올 수 없다는 자신감이었다. 식민 지배로 인한 죄책감이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2009년 10월31일치에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소니·파나소닉·히타치 등 일본 주요 9개사 영업이익의 배가 넘는다”는 기사가 실렸다. 소니는 일본의 자존심이다. 일본 열도가 술렁였다. 그게 10년 전이다.

지금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깔보지 않는다. 두려워한다. 중국에 이어 한국에 추월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감추고 있다.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미안해하지 않는다. 싫어한다. 과거사를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진다는 것이 이유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정면충돌은 가스 폭발 사고를 닮았다. 일본 사회의 한국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밀폐된 공간에 꽉 들어찬 가스다. 징용 판결과 수출 규제는 불꽃이다. 가스 폭발의 원인은 가스지 불꽃이 아니다. 불꽃은 언제나 일어난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아베와 측근들의 기습이다. 관료들은 미리 알지 못했다. 아베는 왜 이럴까? 아베는 정치인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은 당연히 표를 좇는다. 일본 여론은 수출 규제에 압도적 찬성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에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의 사과를 요구한 것은 잘못이다. 국내 정치에 외교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2015년 일본과 합의한 것은 잘못이다. 피해자들과 논의하지도 않았고, 일본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해석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그 이후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안이했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과 정부의 잘못은 일본에 빌미를 제공했거나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정도다. 우리 정부의 미숙함이 한-일 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한-일 관계 악화의 구조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의 추격과 일본의 견제다. 쫓는 나라와 쫓기는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운명적 충돌이다. 피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태의 본질을 알고 있는 것 같다.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제한은 우리 경제의 한 단계 높은 성장을 가로막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김규환 의원은 국가품질 명장이다. 7월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우리 경제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벼랑에서 떨어지고 있다. 공작기계, 로봇, 4차산업 분야 핵심 기술이 없는 우리는 막대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우리와 일본은 지금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우리가 모닝(경차)이라면 일본은 덤프트럭이다.”

치킨게임은 두 대의 차가 마주 보고 달리는 경기다. 상대가 나를 ‘진짜 미친놈’이라고 생각해야 이길 수 있다.

트럼프가 치킨게임의 고수다. 2017년 11월 청와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북-미 정상의 거친 설전으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다.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따로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나는 전쟁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김정은보다 내가 더 미친놈처럼 굴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강자에게 힘이 있다면 약자에게는 깡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깡도 보통은 넘는다. 당분간 문재인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줘야 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당 대표 회담을 뒤늦게 수용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이른바 보수 언론은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우리 정부의 무능을 조롱한다. 아베보다 문재인 대통령을 더 싫어하기 때문일까? 언론이 그러면 안 된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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