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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음모론이 두려운 이유

등록 2005-12-22 17:50수정 2005-12-22 21:21

김희승 논설위원
김희승 논설위원
아침햇발
“노성일과 섀튼의 합작품이라면서?”

“그건 옛날 버전이야. 삼성이 있다잖아!”

엊그제 동창회 송년 모임은 황우석으로 시작해 황우석으로 끝났다. 쟁점은 줄기세포 바꿔치기의 범인과 원천기술의 존재 여부다. 얘기는 황 교수의 극적인 대반전 가능성으로 나아간다. 신문사에 있다는 이유로 따끈따끈한 무언가를 기대한 이들은 명백한 논문 조작 운운하는 나의 동떨어진 현실 인식을 탓한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했는지 정말 답답하고 한스럽다.”

황우석 교수의 이 한 마디는 온국민을 음모론의 진창으로 밀어 넣었다. 국민적 허탈감은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흥미진진한 진실 게임으로 반전됐다. 이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드러난 사실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있을 무언가다. 핵심 인물들의 말바꾸기와 잇따른 추가 의혹은 자신이 믿고 있거나 믿고 싶은 시나리오에 맞게 짜맞춰진다. 사실과 의혹에 의견이 붙고 해석이 뒤따르면서 그 믿음은 점점 강해진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음모 지도’는 유치하면서도 그럴싸하다. 가상의 음모 집단을 일컫는 프리메이슨을 정점으로, 전세계 종교계, 성체 줄기세포 연구진, 미국 유대인계 자본 등이 황 교수를 공격하는 구도로 묘사돼 있다. 초점은 ‘황 교수의 몰락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에 맞춰져 있다.

유력한 시나리오는 이런 것들이다. 성체 줄기세포 연구파가 종교계의 힘을 빌려 줄기세포 연구의 주도권을 쥐려는 음모, 미즈메디병원이 국내 재벌그룹과 결탁해 바이오산업을 독식하려는 계획, 미국 정부와 유대계 자본이 줄기세포 기술을 탈취하려는 시도 등등. 돈의 흐름을 좇는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고, 한두 자락의 사실을 끼워 넣어 적당히 신빙성을 갖췄다.

음모의 씨앗은 불신과 의심이다. 밝혀진 사실이 진실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사람들은 그 배후의 무언가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1학년인 내 딸아이는 아빠가 집에 있는 컴퓨터를 마음대로 조종한다고 꽉 믿고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게 바이러스를 심어놨다는 것이다. 함께 있을 때 연거푸 꺼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딸아이가 ‘아빠의 음모’를 주장하는 근거의 전부다.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을 쓴 데이비드 사우스월은 음모란 ‘원치 않는 사태를 인정할 수 없을 때 나오는 심리적 기제’라고 규정했다. 권력과 정보가 독점된 사회에선 늘 음모가 득세하고 종종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다. 그래서 음모는 권력이 강요하는 거짓 진실에 대한 집단적 저항이자 진실을 드러내는 순기능을 갖는다.

황우석 사태도 얼마 뒤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줄기세포가 있는지, 원천기술은 있는지, 그리고 2004년 논문과 스너피·영롱이의 진위도 드러날 것이다. 과연 이 모든 고통스런 절차가 끝나면 음습한 음모론은 자취를 감추게 될까? 불행히도 음모의 생명력은 질기다. 드러난 사실에 새로운 음모를 덧씌우며 끊임없이 분화하려는 게 본질적 속성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음모의 구성은 더 공고하고 탄탄해진다.

국민 모두 진실 게임에 몰입해 있는 현실은 그래서 답답하다. 각자가 믿고 있거나 믿고 싶은 시나리오의 승패를 초조히 기다리는 듯한 모습은 아슬아슬하다. ‘영웅의 종말이냐’ ‘극적 대반전이냐’에 무심히 표를 던지는 행위는 안타깝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끝없는 음모론에 휘둘리다 그토록 소중한 성찰의 기회를 앗길까 두렵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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