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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의사소통의 세 가지 조건 / 고명섭

등록 2019-05-07 16:27수정 2019-05-07 18:56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20세기 독일 합리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인간 이성에 기초해 사회를 합리적으로 재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철학자의 기본 관점이다. 하버마스의 주저로 꼽히는 <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사람들이 일상의 생활세계에서 어떻게 고립된 주관성을 뛰어넘어 상호주관적인 의사소통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논증했다.

하버마스가 이상적인 의사소통의 조건으로 주목하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가 ‘진리성’이다. 진리성이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 사실과 발언이 일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백조’를 두고 ‘흑조’라고 하면 진리성에 위배된다. 사실대로 말해야만 올바른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는 ‘진실성’이다. 말을 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속이려고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서로 진실하게 이야기할 때 토론이 올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고 상호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정당성이다. 주장하는 내용이 공동의 문화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규범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일 상황을 예로 들면, 나치즘을 찬양하거나 아우슈비츠 학살을 부정하는 것은 설령 신념을 표명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회가 공동으로 구축한 규범을 깨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 올바른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생각이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이 이상에 가깝게 구현된 경우를 찾자면 시민이 참여해 공적인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이끌어내는 공론화위원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회는 어떨까. 정당들이 경쟁을 통해 상대를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보면 국회는 ‘전략적 언어행위’ 공간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요구가 합리적 토론 속에 법률로 제정되는 공론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사소통적 공간이기도 하다. 이 국회가 합리적 의사소통의 조건을 최소한이라도 갖추자는 뜻에서 도입한 것이 국회선진화법이다. 이 법을 제1야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침탈한 것은 의사소통의 최소 조건을 무너뜨린 행위다. 그러면서 ‘헌법수호’와 ‘독재타도’를 외친다. 사실에도 맞지 않고 진실성도 없으며 정당하지도 않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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