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비평가 유튜브가 세상을 바꿨다고 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최고 선망 직업이 됐다는 말에 사람들은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몇해 전에는 페이스북이 세상을 바꿨다고들 했다. 그 이전엔 트위터였는데 위세가 사뭇 대단했다. 2010년대 초, 들불처럼 번진 아랍의 봄에서 트위터는 최고의 혁명 무기였다. 생각해보니 지난 10년 동안 세상은 상전벽해, 환골탈태를 열두번도 넘게 한 것 같다. 갑자기 서러워진다. 난 혁명도 못하고 방도 못 바꿨구나. 눈물을 닦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런가? 세상이 그렇게 엄청나게 바뀌었나? 이런 얘길 듣다 보면 잔뜩 먹긴 하는데 헛배만 부른 느낌이다. 봄이 왔다는데 왜 아직도 아랍은 저리 추워 보이는가. ‘역사상 가장 큰 광장’이라는 페이스북은 왜 그렇게 폐쇄적이며, 심지어 저커버그는 그곳을 지금보다 더욱 닫힌 곳으로 만들겠다 선언했는가. 유튜브가 인류의 표현 양식을 송두리째 바꿨다는데 왜 아직 대학(원)생은 유튜브에 대해 논하라는 시험문제의 답안을 손으로 꾹꾹 눌러 적고 있는가. 작가 조지 오웰은 비행기와 라디오가 이동거리와 국경을 없앨 거라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순진한 망상인지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설명한 적이 있다.(1944년 5월12일치 <트리뷴>) 예컨대 1914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러시아를 제외하면 여권 없이 어떤 나라도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장하준은 “이 순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인터넷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며 “실은 전신 서비스나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훨씬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남산타워가 손톱만 하게 보인다고 해서 실제로 그렇게 작은 건물일 리는 없다. 적어도 상식을 지닌 성인에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사건의 ‘크기’ 또는 ‘경중’에 대해서는 종종 착각하거나 잘못 판단한다. 최신 편향, 즉 과거 사건보다 최근 벌어진 일에 훨씬 큰 비중을 두는 생각의 습관 때문이다. 근래 벌어진 사건일수록 사소한 디테일까지 기억하기 쉬우며 찾을 수 있는 정보량 자체가 많은 반면 오래된 사건일수록 그렇지 못하다. 지금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대단하고 새로워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문제는 이러한 ‘현재의 특권화’가 현실에 대한 단순한 과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지금 일어나는 사건을 전례 없이 독특하고 새로운 일로 오인하게 함으로써 원인이나 배경을 잘못 판단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엉뚱한 해결책으로 이끈다.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권 지지율이 극적으로 떨어지자 20대 남성 집단에 대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설훈 의원은 20대 남성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렇다고 했다. 홍익표 의원도 20대 보수화는 전 정권의 반공교육 때문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시사인(IN)>은 20대 남성이 여러 측면에서 다른 집단과 확연히 구별되며 특히 반페미니즘 성향에서 완벽히 이질적인 존재임을 강조했다. 내용과 결은 다르지만 20대 남성에 대한 이들 설명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이런 20대 남자는 없었다’로 수렴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반공교육을 받아 20대가 그리됐다면, ‘레알’ 군인 독재자들에게 ‘뇌새김’ 수준의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지금 40~50대는 어떻게 운동권이 되어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걸까. 그리고 군가산점제가 폐지된 20년 전, 민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난동을 부리던 당시 ‘반페미니즘 전사’들은 어쩌다 페미니즘에 제법 호의적인 40대 아재가 되어버린 걸까. 미디어학자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현재의 충격>에서 디지털 시대가 어떻게 즉각적 순간에 주목하게 했는지를 탐색하며 ‘서사의 붕괴’를 말한다. 그러나 사실 붕괴한 것은 역사이지 서사가 아니다. 역사적 조망이 사라진 자리는 과도한 서사화로 채워진다. 그런 서사 과잉의 대표적 형식이 바로 음모론이다. 현재를 설명하는데 과거와 미래가 편의적으로 동원됨으로써 구멍 없는 매끈한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몰역사적 현실 분석은 너무 쉽게 마녀사냥과 괴물 찾기로 치환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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