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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방 사장님, 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 이순혁

등록 2019-04-21 18:37수정 2019-04-22 09:04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한겨레 데이터베이스.

최근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조정기일 출석요구서란 걸 전달받았습니다. <한겨레> 보도와 관련해 반론청구가 접수됐으니, 정해진 기일에 출석해 상대방과 조정에 응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사자 해명이나 반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기사가 있었나 보네’ 하며 출석요구서를 살피려는데, 신청인 이름이 단박에 눈에 들어오더군요. 방상훈. 일등신문 <조선일보>를 이끌고 계신 방 사장님이셨습니다.

방 사장님은 검·경의 ‘장자연 리스트’ 부실수사를 지적한 <한겨레> 칼럼이 독자들에게 “대단히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며 “언론사 사장의 지위를 남용해 검·경의 수사를 무산시킨 것처럼 보도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의 반론보도를 요구하셨더군요.

그런데 진지하게 되묻고 싶습니다. 언론사 사장의 지위를 정말로 남용하지 않으셨는지요?

지난해 7월 <피디수첩>에서는 2009년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서 장씨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 인터뷰가 방영됐습니다.

“조선일보 측 관계자가 나에게 찾아와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우리하고 한판 붙자는 겁니까?’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이름이 거명되지 않게 해달라고 조선일보 측에서 경찰에 굉장히 거칠게 항의를 했습니다. 모욕으로 느꼈고, 정말 협박으로 느꼈죠.”

조 전 청장은 다른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도 “조선일보 쪽 압박이 있어서 전례가 거의 없는 방문조사를 지시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조 전 청장을 찾아가 협박한 관계자가 이동한 당시 사회부장이었다는 보도들도 여럿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방문조사라도 제대로 이뤄졌나요? 이와 관련해 추천해드릴 만한 최근 〈한겨레〉 기사가 있습니다. 2009년 4월23일 방 사장님 방문조사 때 ‘캡과 바이스가 배석했다’는 기사입니다. 기업체 대표가 조사받는데 직원이 배석한다? 사회 경험이 짧아서인지 저로선 난생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수사기관 조사 때 변호인이 아닌 제3자 배석 자체는 미성년 아동이나 성폭력 피해자 등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나 경찰 수사를 받는데 하필 경찰 출입기자들을 총괄하는 팀장(캡)과 부팀장(바이스)이 배석했다니,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제가 이상한 걸까요?

방 사장님은 지난달 열린 ‘방 사장 사건 진상규명 집회’ 보도도 문제 삼았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도로 앞에 모인 여성 200여명이 ‘피해자의 이름이 아닌 가해자의 이름 ‘방 사장 사건’으로 불려야 한다’, ‘명백한 가해자인 조선일보 방씨 일가를 포함해 아직도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가해자들을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밝혀낼 것을 요구한다’ 등 주장을 했는데, 이를 다룬 기사가 방 사장님의 “명예와 신용을 본질적으로 훼손”했다고 주장하시더군요.

그런데 방 사장님, 기사를 꼼꼼히 보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지목한 명백한 가해자는 방 사장님이 아니라 ‘조선일보 방씨 일가’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참고할 만한 〈한겨레〉 기사가 있습니다. 방 사장님의 둘째 아드님(방정오 전 티브이조선 대표)이 장자연씨와 자주 통화하고 만났다고, 둘째 아드님 측근이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진술했다는 내용입니다. 둘째 아드님으로부터 ‘(측근인) ㅎ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접대를 받은 것으로 꾸며줘서 사건이 잘 마무리됐다’는 말을 직접 듣기도 했답니다.

사실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억울할 것도 같습니다. 나와 무관한 일에 내 이름이 계속 언급된다면 얼마나 속이 터질 노릇이겠습니까. 하지만 <한겨레> 기사에 화가 나서 언론중재위를 활용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아드님과 대화를 좀 해보시는 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아들로 부족하면 동생(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을 만나보는 것도 좋았겠고요. 방 사장님의 “명예와 신용을 본질적으로 훼손”한 건, 집회를 연 여성들이나 <한겨레> 기사가 아니라 더 가까이 있는 누구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가족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보심이 어떨는지요.

이순혁
정치사회 부에디터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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