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부문장 나이를 먹어간다는 징표일까? 요즘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대중매체에서 사람 이야기를 접할 때면 ‘그래서 그 사람은 행복할까’ 스스로 되묻곤 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아쉬움이 ‘행복 조바심’을 불러오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의 삶이 그만큼 팍팍하다는 방증이리라. 지난달 초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마음속에서 ‘그래서?’라는 까칠한 반응이 튀어나온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게다. 네이버에서 이 발표를 다룬 기사들에 ‘좋아요’보다 ‘화나요’를 누른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걸 보면, 내 반응이 한국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리 동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 이상인 나라)에 진입했으니 이제 우리는 선진국 국민이 되는 걸까?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규모 면에선 이미 세계 10위 안팎의 ‘선진국’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이고, 출산율은 꼴찌이며,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는 좀처럼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지? 멕시코에 이어 두번째로 긴 노동시간은 또 어떤가.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마침 ‘국민소득 3만달러’ 발표 보름 뒤인 3월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이었다. ‘뭐 그런 날이 다 있나’ 싶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철학은 꽤 의미심장하다. 경제의 패러다임을 ‘성장’에서 ‘행복’으로 바꿔나가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유엔이 2012년 ‘행복의 날’을 제정하면서 내놓은 결의안은 “행복 추구는 인류의 근본적인 목표”라고 선언했다. 지디피는 그러한 목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므로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며, 지속가능한 발전과 행복 증진을 위해서는 경제 성장에 대해 “좀 더 포괄적이고 공평하며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경제 성과를 측정할 때 지디피 외에 삶의 질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제안한 ‘스티글리츠 위원회’ 보고서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부탄의 국민총행복(GNH) 개념이 이 결의안에 영감을 줬다. 유엔은 이 결의안에 따라 매년 행복의 날에 국가별 행복도 측정 결과 등을 담은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여기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가 덴마크다. 행복도 조사는 각 나라 국민들에게 주관적 행복감을 물어 점수화한 뒤, 1인당 지디피, 건강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삶의 선택 자유, 관용, 부패 등 6개 지표가 행복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덴마크는 이 조사에서 3차례나 1위를 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찬사를 받는다. 지금까지 7차례 조사에서 한번도 거르지 않고 3위 안에 든 유일한 나라다. 덴마크를 비롯해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늘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이들 나라의 행복도에는 대체로 사회적 지지(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지표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50위권을 맴돈다.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신뢰, 평등, 튼실한 사회안전망을 꼽는다. 사실 이 세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웃에 대한 신뢰(오이시디 1위)와 정부의 투명성(국제투명성기구 청렴도 1위)이 높다 보니 국민들은 기꺼이 세금을 낸다.(조세부담률 오이시디 1위) 세금은 국민들이 각자도생하지 않고 사회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데 든든한 밑천이 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말했듯이, “복지는 세금을 통한 공동구매”이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쓴 덴마크 행복 비결 탐구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는 수입의 50%를 세금으로 낸다는 고액 연봉자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우리가 세금을 내기 때문에 덴마크는 걱정 없는 사회가 된 겁니다. 나뿐 아니라 내 친구들이, 그리고 내가 모르는 우리 이웃들이 평생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고 건강을 돌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요?” 우리도 덴마크 사람들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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