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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9·11 동시테러 직후 연방수사국과 정보기관의 수사권을 크게 강화했다. 그 총화가 애국법이다. 모두 200여 조항으로 구성된 5년 만기 특별법으로 올해 말 시효가 끝난다. 위력은 실로 막강하다. ‘테러 혐의’라는 이름만 붙이면, 누구든 영장 없이 가택 수사와 계좌 추적을 할 수 있다. 인터넷 기록과 전자우편을 샅샅이 뒤지고, 병원 처방이나 진료기록도 쉽게 볼 수 있다. 수사 결과 무혐의로 드러나면 그냥 없던 일로 하면 된다.
한데, 시효가 다가오면서 약발이 예전 같진 않다. 지난 여름에는 도서관 사서들이 서고를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이용자들의 도서관 이용 정보를 제한 없이 수사하도록 허용한 조항을 삭제하라는 것이다. 대법원의 ‘반애국적’ 판결도 잦아졌다. 연방수사국이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고객 정보를 강제로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한 조항에 위헌 판결을 내리더니, 테러 용의자한테도 미국의 사법제도를 이용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동안 콜로라도 등 7개 주와 400여 기초의회가 애국법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평범한 시민들은 애국법 때문에 일상이 더 불편하고 불안해졌다고 호소하고, 인권·시민 단체들은 인권침해 조항을 끈질기게 문제 삼는다.
애국법 일부 조항을 영구화하거나 연장하려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계획도 최근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부시 대통령이 영장없는 비밀도청을 수십차례 승인한 사실을 <뉴욕타임스>가 폭로하면서 상원에서 개정안이 부결된 것이다. 특히 이 신문은 1년 전 취재한 내용을 백악관의 자제 요청으로 보도를 미뤄오다 상원 표결 날 아침에 터뜨려 부시의 심기를 건드렸다. 부시는 “도청은 안보를 위해 필요하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정공법을 택했지만, 레퍼토리는 5년 전과 똑같다. 공화당 안에서조차 ‘안보냐 인권이냐’란 선택지가 “짜증스럽다”고 하니, 애국법의 운명이 어찌될지 궁금하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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