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공매 절차에 부쳐져 낙찰된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의 주소지인 ‘연희동’의 지명 뿌리는 조선시대 초기 상왕 거처용으로 지은 별궁 ‘연희궁’이라고 한다. 연희궁이란 이름의 흔적은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 연남동으로도 이어졌다. 현재 연세대 자리를 포함한 연희동 일대는 조선 건국의 주역 중 한 명인 하륜이 태조 이성계에게 도읍지로 추천했을 정도로 명당 대접을 받았다.
연희궁의 용도는 차츰 바뀌고 넓어져 세종 때는 이곳에 ‘잠실’을 설치하고 일대에 뽕나무와 과일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국가 핵심 산업의 하나인 양잠업(누에치기)을 권장하기 위해서였다. 대개 임금은 죽어서야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니 상왕 거처용 별궁이 상시로 필요하지는 않았을 터다. 연희궁을 악용한 이는 연산군이었다. 연산군은 이곳에 연회장을 만들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장소로 썼다고 한다.
상왕을 연상시키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연희동 자택은 현대사에 흔적을 많이 남겼다. 전씨는 이곳에서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모의하고, 1988년 재산 헌납 발표와 함께 백담사로 떠나면서 대국민 사과문을 읽었으며, 1995년엔 내란죄 혐의로 통보된 검찰 출두 명령을 거부하는 이른바 ‘골목 성명’을 내었다.
전씨의 자택이 지난 21일 공매에서 낙찰된 데 이어 25일 캠코의 ‘매각허가 결정’이 났다. 공매에선 낙찰 뒤 일정한 시일 뒤에 매각허가 결정을 하게 돼 있다. 세금이나 추징금 체납자가 낙찰 후에라도 체납금을 완납하는 경우 매각을 취소할 수 있다. 매각허가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이젠 전씨 쪽이 추징금을 모두 납부해도 매각이 취소되지 않는다.
신원미상의 낙찰자는 낙찰가격(51억3700만원)의 10%인 5억1천만원을 보증금으로 캠코에 이미 냈고, 잔금 46억원은 다음달 24일까지 치러야 한다. 잔금 납부 뒤에도 낙찰자가 소유자로서 권한을 행사하려면 명도소송(무단 점유자를 강제로 내보내는)을 거쳐야 한다. 전씨 쪽이 공매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해놓은 것도 변수로 남아 있다. 불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불법적인 통치를 일삼은 이가 법의 보호망에서 버티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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