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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곡의 똑똑똑] 꼰대란 무엇인가

등록 2019-03-24 18:14수정 2019-03-25 09:45

꼰대는 억울하다. 세간에 너무나 많은 억측과 오해가 난무함으로. 먼저 반말을 한다느니, 초면에 인생에 훈수를 둔다든지 하는 것까진 인정. 하지만 인사를 먼저 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느니, 커피나 담배를 대령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느니, 반대 의견에 또 화를 낸다느니, 아니 꼰대가 무슨 분노조절 장애인이라도 되는 것인가.

꼰대의 정체성을 엄밀하게 정의하기 위해, 꼰대의 만국공통어일 “나 때는 말이야…”를 면밀히 분석해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모두가 친숙한 인물들을 예로 들겠다(모두 범죄자들이고 현재 무직이므로 직함은 생략한다).

첫째, 행동과 생각의 강요는 꼰대가 아니다. 폭력·강요·명령은 권위주의의 속성이지, 꼰대의 속성은 아니다. 그게 꼰대면 전두환도 꼰대다. 그러나 전두환은 꼰대보다는 깡패나 흉악범에 가깝다. 29만원밖에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치매를 감행하는 광인이기도 하다. 반대로 꼰대는 어느 정도의 도덕성과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고 우기는 것은 보수주의지, 꼰대가 아니다. 물론 많은 꼰대가 보수주의자이기는 해도 말이다. 만약 재래방식의 고집이 꼰대라면 이명박도 꼰대다. 그러나 이명박은 꼰대라기보다는 기업가나 회계사에 가깝다. 그는 ‘+’와 ‘―’, 이해득실밖에 모른다. 게다가 그는 돈이 많다. 대부분의 꼰대는 부자가 아니며, 권력의 주변부를 어슬렁거리는 골목대장에 가깝다. 그는 충실하게 권력의 패턴을 전파하는 권력의 아바타이기도 하다.

셋째, 특권의식 역시 꼰대가 아니다. 그건 귀족주의다. 만약 귀족주의가 꼰대라면 박근혜도 꼰대일 터인데, 실상 박근혜는 공주님 혹은 공중부양 외계인에 가깝다. 꼰대는 최소한 지구인이다. 최소한 주체성을 가진다. 좋은 꼰대는 자폐적 이질성이 아닌, 주변인들과 어떻게든 교류하는 동질성을 통해 주체성을 확립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보다는 최순실이 더 꼰대에 근접한다.

꼰대주의는 권위주의·보수주의·귀족주의가 아니다. 꼰대는 분별력·충실성·동질성을 가진다. 또 그것은 “나 때는 말이야…”에서처럼 시간에 대한 분별이자 충실성이고 동질성이고. 꼰대는 헌 시간과 새 시간에 대한 분별력,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충실함과 타인이 살 시대에 강요되는 동질성으로 정의된다. 꼰대는 분명 억울한 사람이지만, 그건 시간에 대한 억울함이다. 그의 시대는 가버렸으나, 여전히 그의 시간이 지금의 시간에도 전파될 거라는 충실함과 강요적 동질성으로 그는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시대착오증자다.

꼰대에게 시간의 진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왕따나 고문관이 되거나, 때로는 권위주의자인 척하면서 존댓말과 담배 심부름을 요구하거나, 때로는 박애주의자인 척하면서 인생에 오지랖을 행사하는 것은 이 시대착오의 간극을 메꿔보기 위해서지, 결코 그런 것들이 꼰대의 본질이어서가 아니다. 즉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너도 그렇게 생각하라’ ‘나도 그렇게 행동했으니, 너도 그렇게 행동하라’, 이것이 꼰대정신이다.

꼰대의 정체성은 시대의 강요 충동에 있다. 그것이 철 지난 시대라서 불행할 뿐. 더 광의적으로 본다면 상대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는 필시 잠재적 꼰대다. 거기다가 약간의 권위주의, 약간의 보수주의, 약간의 귀족주의를 맛소금처럼 살랑살랑 뿌려보라. 그러면 우리가 오늘도 무던히 마주쳤던 그 꼰대 군단이 바로 사출되어 나온다. 요컨대 ‘나도 그렇게 살았으니, 너도 이렇게 살아라’, 이것이 꼰대다.

첨언. 위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든 꼰대의 문제는 정치적 문제다. 타인에 대해서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과연, 대우받고 싶으면 먼저 존중해야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부터 먼저.

영화감독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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